“모든 절차 생략, 일단 돈부터 빌려드릴게요”
“모든 절차 생략, 일단 돈부터 빌려드릴게요”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03.14
  • 호수 12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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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코 베일 수 있는 대출 상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캠퍼스를 활보한다. 그들은 길을 지나가는 학생들 손에 포스트잇을 하나씩 쥐어준다. 남자들이 나눠준 포스트잇에는 ‘대학생 전문 대출’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포스트잇을 나눠준 해당 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대출 상담을 해봤다. 이자율은 연 8~39%이지만 최대 30%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 대출 경험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소득은 용돈밖에 없고 대출은 처음이라고 얘기하자 “고객님의 경우 약 2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대출이라는 것, 생각보다 참 쉬웠다. 그리고 일정한 수입이 용돈밖에 없는데 200만원이라는 거금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어 상담원은 “부모님 동의도 필요 없고, 빌린 돈을 잘 갚기만 하면 비밀은 평생 보장해 준다”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증명서와 본인 명의의 통장 복사본, 주민등록등본을 팩스로 보내면 원하는 금액만큼 즉시 계좌로 송금 해 주겠다”고 말했다.

애초에 돈을 빌릴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상담원과의 통화를 하다 보니 ‘꽤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자율이 높다지만 소액만 대출하면 갚는데 별 어려움도 없게 느껴진다.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상담원이 바로 치고 들어온다. “돈을 빌린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돈을 잘 갚아 나가고 있어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출 상담원은 처음엔 단순히 대출 문의에 대한 ‘상담’을 해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이 대출의 적기임을 강조하며 대출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통화가 길어지자 ‘신용조회’라는 말이 상담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덜컥 겁이 나서 한번 생각한 뒤에 연락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3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핸드폰이 울린다. 번호를 보니 대출을 문의했던 바로 그 업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더니 다짜고짜 대출 신청을 위한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 말을 꺼낸다. 너무 놀라 “대출할 마음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이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전화기를 아예 꺼뒀기 때문이다.

대출은 생각보다 큰 금액이 가능하고, 단계가 간소하며, 거절하기 쉽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전화를 했다간 대책 없이 당할 수 있다. 대부업체 광고에서 나오는 ‘대출은 계획적으로’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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