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보다 더 큰 위기
경제위기보다 더 큰 위기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03.08
  • 호수 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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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07년 여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던 사람들도 이제는 각자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피해 황급히 뛰어다니는 모습이다. 이제는 경제위기가 그야말로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노동자에겐 듣도 보도 못한 단어였다.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미국 사람들에게 잘못해본 적도 없고, 미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겪고 있는 실직의 고통과 자산 가치 하락의 압박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무엇이 태평양 너머에 있는 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처럼 동시에 곤경에 처하게 한 것일까. 우린 왜 미국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파산 소식에 겁을 먹고 잠을 설쳐야만 하는가.

물론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매일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그것이 세계화와 금융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발생되는 연쇄고리라고… 하지만 그로 인해 직장을 잃은 어느 노동자에게 그러한 설명이 과연 이론처럼 당연하게 납득될 수 있을까.

“당신이 직장을 잃은 이유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태평양 너머에 사는 어느 신용이 낮은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이고, 또 그런 위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으면서도 무분별하게 금융파생상품을 만들어 낸, 역시 태평양 너머에 사는 어느 자본가들 때문이다.”라고 누군가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면 말이다. 밤낮없이 생업에 종사하느라 신문은커녕, TV뉴스도 챙겨보기 힘든 평범한 블루 칼라의 한 사람인 그 노동자는 차라리 허름한 술집에서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라는 한탄으로 안주를 삼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가 조중동 중 하나를 구독해온 열혈독자라면 “이게 다 지난 10년 동안의 좌파정권이 박아 놓은 대못을 아직 다 못 뽑아낸 때문이다.”라며 울분을 토할 지도..

언제부턴가 우리 삶에 커다란 위기라고 할 만한 일들이 자꾸만 우리 삶의 테두리 밖에서 나타나는 듯하다. 그럴수록 우리는 그 거대한 위기 앞에 초라한 낙엽이 되어 바람 부는 대로 흩날리는 존재가 되어간다.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삶의 주체로서 살지 못하고 제도와 시스템에 쫓겨 아등바등 ‘살아내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삶의 위기가 아닐는지.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건 대통령이 일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변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더 묻지 않을 수 없다. 외부 변수로 인해 한 나라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과연 정상적인가를.

노승욱 <경영대ㆍ경영학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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