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취재부
  • 승인 2005.11.08
  • 호수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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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흘림 기둥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가을이 깊어가고, 가을을 머금은 사과의 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 가을 떠나기 좋은 곳,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품고 있는 부석사를 소개한다. 소백산의 깊은 품에 안겨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가을에 그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부석사는 ‘태백산 부석사’라고 한자로 써진 일주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은행나무 터널은 가을을 맞아 부석사 가는 길의 흥취를 한껏 더해준다. 노란 빛으로 물든 은행나무 터널을 지나다 보면 빠르게 지나가는 가을이 더욱 좋아진다. 은행나무 터널이 끝날 즈음이면 천왕문의 모습이 보인다. 천왕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부석사의 단아한 절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부석사의 대웅전인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안양루, 조사당 등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부석사의 백미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다. 부드럽고 탄력적인 곡선미를 보여주는 배흘림기둥은 부석사에서는 보이는 수많은 산들의 부드러운 능선을 닮아 있다. 배흘림기둥의 갈라진 틈 안에는 흘러간 시간이 빼곡히 숨겨져있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그 무수한 시간들이 오롯히 전해진다.

부석사의 선묘각에는 한 여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선묘라는 중국 여인이다. 이 선묘라는 여인의 초상화는 부석사의 전설을 전해준다. 부석사의 부석(浮石)이란 이름은 우리말로 '뜬 돌'이란 뜻이다. ‘돌이 떠 있다’라는 말인데, 실제로 무량수전의 왼쪽 뒤로 부석이 있다. 돌이 실제로 떠 있을 수는 없고 아래 돌과 틈이 벌어져 있다. 이 돌이 선묘라는 여인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선묘는 의상대사가 중국에 있을 때 의상대사를 몹시 사모하였으나,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선묘는 의상대사가 신라로 돌아가자 의상대사를 잊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대사가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이 자리를 차지한 도적들 때문에 절을 짓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죽은 선묘가 돌을 띄우는 영험을 보여 도둑들이 도망가고, 지금의 자리에 부석사를 지을 수 있었다. 지금도 있는 부석이 바로 선묘가 띄웠던 돌이다. 그 돌에는 선묘의 의상대사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이 담겨져 있다.

늦 가을에 찾는 부석사는 무척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으로 가득 찬 초입부터 단아하게 자리잡은 각종 건물들, 문화재, 그리고 배흘림기둥에서 전해오는 전설들 모두 아름답다. 배흘림기둥에서 기대어 서서, 안양루에 올라서 일상의 고민들을 하나씩 되새김질 하면서 그 고민들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천년을 넘게 지켜온 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부석사. 그 곳에 가자. 청년실업, 토익, 학점이라는 일상의 고민들을 던지고 은행나무 숲길에서,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서, 안양루에서 일상과 다른 나를 만나보는 것은 매우 유쾌할 것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부석사로 떠나는 것이 어떨까?

부석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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