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세금 담당자로 산다는 것
한국에서 세금 담당자로 산다는 것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2.07
  • 호수 1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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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직원
<재무처ㆍ회계과>
저는 학교에서 월급을 주고 세금을 떼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보통 신문도 경제면을 먼저 보고, 돈 주면서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을 세무경영과 같은 잡지를 챙겨 봅니다. 세법이라는 것이 목적법(원칙보다는 정부 정책에 맞춰 변화되는 법)인지라 항상 체크를 해 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런 잡지의 키워드는 감세입니다. 나라가 어려우니 세금을 덜 걷어서라도 구매력을 향상시키고 경기를 부양하려는 것이지요. 사실 뭔가 세법이 바뀌면 귀찮은 일이 많아지는 터라 별로 달가운 기사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힘든 시기에 사람들 돈을 좀 덜 떼어가는 일이니 나쁘게 볼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 법안을 보면서 맥이 탁 풀렸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어쩌면 정책의 방향을 그렇게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전문가일 텐데 왜 이런 정책들을 내놓았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난다기보다도 안타깝더군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요즘의 감세 정책의 큰 흐름은 벌어들인 돈(근로소득세ㆍ양도소득세ㆍ법인세율 등)에 대해서 좀 덜 걷고, 재산에 대해 붙은 세금(종합부동산 세 등)도 좀 깎아주며, 누군가에게 공짜로 넘겨 줄 때 붙는 세금(상속ㆍ증여세)도 덜 걷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어려운 서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세금을 덜 낸 돈으로 다른 필요한 것을 사라. 그럼 소비도 늘어날 테고 힘든 우리 기업들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라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정책을 만든 사람들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깎아주려고 해도 깎아줄 세금이 없는 사람, 즉 과세점 미만의 소득을 버는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47%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 학교도 많은 사람들이 과세점 미만의 급여를 받습니다. 즉, 내년부터 소득세율이 내려간다고 해도 그건 실제 혜택을 받아야 하는 저소득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세금을 내는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일률적인 세율 인하가 가져오는 혜택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아주 간단하게 예를 들면 소득세율 1%를 내릴 때 연봉(과세표준)이 1억인 사람은 연 1천100만원이 절감되는 반면, 연봉(과세표준)이 1천만 원인 사람은 110만원이 절감되죠.

2007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이번 감세로 상위 20%의 근로자들이 전체 감세액의 86.5%를 혜택 받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래도 여전히 소득이 많은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감세 정책의 목표가 서민들의 생활 안정이라고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책을 만드시는 분들은 많은 분들이 위의 세금 절감 효과를 크게 보시는 분일 텐데 보유세인 종합 부동산세와 고가의 주택 등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ㆍ상속/증여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러한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세금을 담당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다들 아실 테니까요.

얼마 전 정부에서 유가환급금을 준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했습니다. 밝은 얼굴로 신청서를 내시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혹시라도 이 돈(최고 24만원에서 최저 6만원)을 받으면서 지금의 정부가 서민들을 생각하는 정부구나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2008년 겨울 한국에서 세금 담당자로 살아간다는 게 그리 행복하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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