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기장
아빠의 일기장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1.30
  • 호수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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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듯 조금은 노르스름한 종이에 손때가 묻어나던 3권의 책을 만나게 된 것은 5년 전쯤의 일이다. 책 정리 좀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입을 삐죽삐죽 거리며 아빠의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겉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는 자그마한 책들이 쪼르륵 놓여있는 것을 발견해 무심코 그 책을 꺼내봤다. 바로 아빠의 일기장이었다.

일기에는 아빠의 청소년 시절부터 20대의 시절까지가 담겨져 있었다. 나는 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그 일기장들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첫 페이지가 시작됐다.

그 곳에는 아빠의 소소한 일상이 차곡차곡 담겨져 있었다. 지금의 여느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입시와 공부에 대한 고민들과 학창시절 친구와의 추억들, 풋풋하고 수줍은 첫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아빠의 십대시절을 바라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10대 때 아빠의 일기장을 살펴보고 난 뒤, 나는 그 다음 일기장들도 차례로 펼쳤다. 대학시절이 지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서의 아빠의 일기는 청소년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고, 예전과 달리 많은 내용이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엄마와의 만남을 적어놓은 것 중 하나가 나의 배꼽을 잡게 했다.

아빠가 엄마의 식구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갔는데 갑자기 바짓가랑이가 찢어져서 이모들이 꿰매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나는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고, 내 웃음소리를 들은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엄마께 일기장을 보여드렸고, 엄마도 그 에피소드를 읽으시더니 함박웃음을 터트리셨다.

 결국 나는 엄마와 함께 일기장을 쭉 읽어보게 되었다. 한 이야기를 읽던 도중 엄마와 나는 동시에 멈칫했다. 그것은 바로 나의 탄생을 적은 일기였다. 출산 전 만삭의 모습을 하고서 신체적으로 힘들어하던 엄마의 모습이 걱정스러워 보인다는 말과 함께 태어날 아기가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바란다는 글을 읽고 나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아빠는 처음부터 아빠였을 거라고 생각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도 나처럼 청소년기를 거쳤을 것이고, 비슷한 고민도 해봤을 것이며 삶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추억이 가득한데 말이다.

일기장을 통해 아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서 왜 아빠가 나에게 글씨를 삐뚤빼뚤하게 쓰던 어린 시절부터 일기 쓰기를 강조 하셨던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아빠의 아름다운 추억 속 여행을 마치고, 난 내 유치원 시절부터의 일기가 모아져 있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먼 훗날 이 일기장을 읽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또 나의 아이들도 이 일기장을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흐트러져있는 일기장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김수정<언정대ㆍ신문방송정보사회학부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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