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과 열정적 사랑
대학생활과 열정적 사랑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1.09
  • 호수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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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여물어 가고 있다. 아니, 이제는 가을이 단단히 여물어서 열매를 거둬들이고 있다. 따가운 밤송이는 저절로 몸을 벌려 알밤을 쏟아내고, 넓은 들판을 가득 메웠던 벼들은 노오란 빛깔로 은행잎보다 더 빛나게 여물었다. 중간고사를 마친 우리 한양인 들도 책장을 넘긴 만큼 지식과 지혜가 여물었으리라. 여기에 또 하나 우리의 사랑이 여물어 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잘 여문 열매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봄날의 가뭄과 한여름의 땡볕 등 시련을 견뎌야만 얻을 수 있는 결실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또 이 대학 생활을 마치기 전에 ‘사랑’이 여물기를 바란다.

사랑을 언급한 사회학자 중에 영국의 앤소니 기든스를 들 수 있다. 그는 사랑의 종류를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 열정적 사랑(passionate love),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 조형적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 등으로 구분하며 각 사랑의 특성들을 밝혀 놓았다.

그의 사랑 유형 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랑은 바로 열정적 사랑이다. 이것은 너무 ‘지독한 사랑’이기에 때로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일탈과 파괴의 힘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정적 사랑을 추천하고 싶다. 열정적 사랑을 할 수 있는 적합한 시기가 바로 지금, 대학시절이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고통을 겪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대학시절인 것이다. 일탈과 파괴는 자아의 성숙을 통해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사랑을 해 보지도 않고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위험한 것은 잘 다룰수록 그에 준하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법이다.

열정을 바칠 대상은 참으로 많다. 여행, 바둑, 영화, 게임 등등. 그래서 마니아의 경지에 있는 사람도 그만큼 흔해졌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만 빠져들 수 없다.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 그 대상이 바로 ‘인간’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혼자서만 하는 사랑, 우리는 일명 ‘짝사랑’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애달픈 사랑이다. 우리의 생활을 소모적으로 만든다. 자칫 ‘스토커’라는 악명이라도 듣게 되면 그나마 지녔던 ‘짝사랑’에 대한 연민마저 엷어지게 된다. 우리 대학생이 멋지게 ‘미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어린아이는 만물유생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생물을 대하면서도 생명이 있는 대상처럼 대한다. 어릴 적 시절을 한번 되돌아보라. 우리가 낡은 인형에게, 장난감에게 끊임없이 인사를 하고, 쓰다듬어 주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사고 체계가 다시 한 번 더 나타나는 때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대학생은 아직 이러한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에게 빠져들 수 있는 아름다운 시기 한 가운데에 있다.

문학의 주제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사랑이다.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괴테, 도스토예프스키, 생텍쥐페리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문학뿐만 아니다. <요한 1서> 4장에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라는 내용이, <논어 12편> 10장에는 “愛之 欲基生”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래살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처럼 사랑을 예찬하는 것은 사랑에는 무한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한 것이다.

캐나다의 토론토대학 첸-보 종(Zhong) 교수 연구진은 재미있는 연구를 했다. 인간의 외로움과 추위는 서로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아 외로울 때 실제로 추위를 더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들에게 집단 따돌림처럼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배척된 경험을 떠올린 후 실내의 온도를 물어 보았을 때 실제 온도보다 3도 가량 낮은 온도를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가을이 여물어 모든 열매를 거두어들이고 나면 옷깃을 여며야 하는 겨울이 다가온다. 그때 “그녀의 눈은 너무도 싸늘했다. 그녀와 나 사이엔 찬바람이 불었다. 어깨가 시려왔다” 등의 한탄을 한다면 이 겨울을 지내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김미영<사범대ㆍ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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