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사람들
고시원 사람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1.09
  • 호수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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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해 전 용인시 번화가에 있는 고시원으로 몸을 옮겼다. 첫 번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살 곳이 필요해서였다. 매일 밤마다 이어지는 야간 일에 녹초가 되긴 했지만 눕기만 하면 피로가 싹 가시는, 더할 나위 없는 포근한 보금자리였다. 물론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볼 때마다 이게 낮인지 밤인지 따로 구별해야하는 불편한 구석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자야하는 나의 생활흐름상 창문이 없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고른 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창문이 있는 방 보다 2만원 더 저렴하긴 했다.
올 7월 용인시 어느 고시원에서 7명이나 숨지는 큰 화재가 났다. 뒷덜미를 잡아끄는 이상한 기운에 인터넷 뉴스를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살았던 그 고시원이었다. 화마가 나를 빗겨나갔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 순간 이웃이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운 동고동락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고단한 외국인 노동자부터 주말도 없이 술집을 다니는 누나들, 그리고 가난한 학생들까지 정작 고시생은 없었던 그 이웃들은 보증금500만원이 없어 고시원에 들어온 나와 다르지 않는 처지였다. 

이 화재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열심히 살고자 노력했던 그들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행복도 미래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그들이었다. 또 치솟는 등록금에 하숙비조차 부담스러워 했던, 하나같이 외로운 현대인들의 모습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안전이 생존조건에 포함되지 않은 건 그것이 오히려 사치였기 때문이다.

바로 코앞에 있는 도로 건너 안전하고 깔끔한 고시원은 그들이 살았던 세상과는 천양지차다. 그런 곳을 몰라서 안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도마 위에 오르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비판이 거슬린다. 고시원이 마치 난잡한 수용소라도 되는 양 낙인찍는 분위기는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의 마음만 허전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들도 그곳이 좋아서 사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곳 아니면 갈 곳 없는, 더 정확히 말하면 갈 수 없는 그들을 위한 대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뉴타운 내 이들의 주거를 위한 단신용 주택단지를 세워보자는 아이디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일까?

다들 사람 살 곳이 못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들의 속사정은 왜 헤아려 주지 않는 걸까. 그들의 입장이 나와는 먼 일이라며 잠깐의 동정으로 할 일을 다 한 듯 쉽게 화재의 기억을 지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 덕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부채의식은 묘연해진다. 2년 전의 기억에서 돌아와 험난한 취업을 위해 다시 우리학교 앞 고시원을 기웃 거리는 내 모습이 쓸쓸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일까. 요즘은 옛날보다 빈 방 찾기가 더 어렵다.


김현하<사회대ㆍ사회학과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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