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그 이상의 지식을 위해
지식, 그 이상의 지식을 위해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0.12
  • 호수 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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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지 몇 달이 지났다. 대학교에 와서 즐거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일중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다양한 학문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는 호기심의 발산이 허용됐다는 것이다.

이과생인 필자에게 수많은 화학 분자식과 생화학 반응 메커니즘에서 보기 어려웠던 현실 사회에 대한 사회과학의 깊이 있는 탐구는 지적자원으로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 또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에 따른 인간사고의 산물인 인문학은 마치 바다를 처음 본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을 느끼게 했다.

모름지기 대학생이 대학에서 그려야 하는 한계효용곡선은 매일 먹는 양식보다 배움에서 더 높게 그려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효용곡선 하에서 지식은 축적된다. 우리는 학문 간의 유기적 연계와 그에 따른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현실을 봐야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벌써 케케묵은 얘기가 되었지만 광우병 파동을 보며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다. 광우병 협상 그 자체만을 놓고 그 잘잘못을 논하는 자들과 그에 대한 반대를 마치 대단한 민주주의적 정의실현인 듯 주장하는 이들을 보며 이것이야 말로 민중의 우매함을 드러내는 중우정치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인터넷을 포함해 주위에서 범람하는 정보가 양적으로 풍부하다 해서 질적으로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가 정보의 평등화를 실현해 사람들이 바람직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분명한 오산이다.

과연 사람들은 광우병협상의 현실적 불가피성을 인지하고 있을까? 이것으로 재협상을 했을 때 일어나는 국제 정치와 무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사안으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까? 이러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사람들은 정부의 국제법상의 재협상불가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대를 한 것일까?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은 간과하거나 경시하는 모습이 적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상식과 사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한다.

우린 왜곡과 편파의 숲에서 진실을 찾아 해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 진리를 향한 횃불을 높이 들어 우리의 열정이 진리를 향해 밝게 빛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우리의 뜻을 세워야한다. 세워진 뜻을 바탕으로 우리의 능력과 재능을 쏟아 사회지도자층으로 나아가야한다. 그래서 사회지도자층으로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의 축복이 또 다른 이에게도 축복이 되도록 힘을 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현시키는 것은 비단 기부문화나 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대한 따뜻한 인도주의적 관심에서 비롯된다. 사회소외계층과 사회기득권계층을 향한 동등한 관심에서 ‘가진 자의 의무’가 실현된다고 나는 믿는다.


김현호<자연대ㆍ자연과학부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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