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배움터에 대한 소망
편안한 배움터에 대한 소망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10.05
  • 호수 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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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긴 여름이 가고 마침내 배움터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아침 9시 반 쯤에 학교에 와서 오후 9시 넘어 학교에서 나가는 나로서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더 길다. 어찌하다보니 집에 가서는 겨우 잠만 자고 오는 하숙생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때문에 나로서는 배움터의 환경이 집의 환경보다 더 중요하다. 아마도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배움터는 중랑천변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전망이 좋다. 필자가 생활하는 인문대의 옥상에 올라가면 남쪽으로 남한산성, 청계산, 관악산, 그리고 한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도봉산과 북악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아마 서울의 어느 대학도 이렇게 좋은 전망을 가진 곳은 없으리라.

하지만 인문대학 건물의 정문을 나서면 좋은 전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꽉 찬 건물과 건물이 나의 시야를 가려버린다. 그리고 길은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으로 뒤덮여 흙을 밟는 것은 불가능하다. 잔디밭 사이에 난 길을 꿈꾸는 것은 아마도 사치이리라. 나는 인문대 앞마당에 잔뜩 주차해 있는 차량 사이를 비집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이 마당엔 불법 주차 차량이 잔뜩 늘었다. 배움터 마당을 점령하고 있는 이 차들을 어찌할 것인가.

일본의 도쿄대학이나 중국의 북경대학에 갔을 때, 배움터 안에 가득 주차해 있는 차량들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한가로이 다니는 자전거만이 배움터 내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미국의 대학들도 대부분 학교 주변에 주차하도록 하고 있지 강의실 바로 앞마당에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주차하도록 해 두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서울캠퍼스 안에서 특히 인문대와 자연대 앞의 주차장은 전혀 질서 유지가 되고 있지 않다. 나는 언젠가 이 주차장 자리에 넓은 잔디밭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소박한 꿈을 가져본다.

인문대에서 도서관을 걸어가는 길에서는 들락날락하는 차량과 오토바이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인도와 차도의 구별이 없는 가운데 차량은 수시로 들락거리고 오토바이는 질주한다. 공격적인 차량과 오토바이의 질주 앞에서 나 자신도 방어를 넘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대학 내의 또 하나의 공해의 주범은 바로 오토바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 근처 식당 배달원들이 몰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배움터 내 공기 오염과 소음의 주범이다.

얼마 전 중국의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오토바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전기를 충전해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교내에 오토바이가 다니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주변 식당들과 학생들에게 교내 출입 오토바이는 모두 전기충전식으로 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하는 것은 어떨까. 

배움터의 마당은 학생들에게는 강의실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공간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정서를 키워나가기 때문이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그리고 무질서하게 주차한 자동차들 사이에서 4년 동안 공부한 학생들의 정서가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삭막하고 공격적인 캠퍼스는 각박하고 공격적인 성격을 지닌 학생들을 만들어내게 되지 않을까. 보다 편안하고 여유 있고,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배움터는 보다 관대하고 정서가 풍부한 학생들을 만들어내게 되지 않을까.

보다 자연친화적이고 질서 있고 여유로운 캠퍼스를 만들어 학생들이나 교수들로 하여금 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가르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것이 이 초가을에 가져보는 나의 소박한 꿈이다.
박찬승 교수
<인문대ㆍ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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