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이제 ‘한물’갔다?
포스트모더니즘 이제 ‘한물’갔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8.09.28
  • 호수 12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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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그리고 그 후

「모던보이」와 「모던타임즈」 같은 단어 다른 느낌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모던보이」는 김혜수, 박해일 주연으로 1937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서 엿볼 수 있는 모던함은 배우 김혜수와 박해일의 옷차림에서 느껴지는 경성 최고 멋쟁이로서의 면모다. 「모던보이」와 제목이 비슷한 찰리 채플린 주연의 「모던타임즈」는 같은 ‘모던’이지만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사회적 배경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두 영화에서 느껴지는 모던함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이 있다.

한국사회에 모더니즘이 들어왔던 일제강점기 시대는 타의에 의해 근대화는 진행됐지만 산업화 과정은 부재했다. 반면 서구사회는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 위에서 기계화된 모습처럼 근대화와 더불어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김명수<언정대ㆍ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모더니즘의 근본속성은 권위에 반항하며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계산적인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사회는 산업화가 부재했고 30년대 들어서야 겨우 이론적으로 받아들였던 모더니즘을 서구사회만큼 성숙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모던보이」에서는 모더니즘 보다 친일파나 독립을 얘기하지만 희화화된 지식인이나 예전엔 상영 될 수 없었던 일본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모더니즘의 키워드를 반항적, 계산적, 이성적인 20세기 초의 흐름이라 정의한다면 ‘포스트’가 가미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 Made in USA
‘포스트(post)’가 내포하는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로는 모더니즘을 넘어선다는 뜻에서 초월의 의미가 있고 둘째로는 모더니즘에 반한다는 개념에서 안티적인 의미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올 수 있었던 사회적인 배경은 모든 발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서구세계의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서양식 사고체계는 모든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우열을 가린다. 박기수<국문대ㆍ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성과 감성, 남성과 여성, 신도와 불신도, 서양과 동양으로 서열화된 차별주의는 열등한 것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사고의 자유를 거세하는 서양의 기본 사류다”며 “제1차, 2차 세계대전 이후 잇달아 진보에 대한 믿음이 불확실해지면서 그 원인을 모더니즘의 결과에서 비롯했다고  간주해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분수령으로 혁명적이라 할 만큼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희망과 낙관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절망과 비관주의로 바뀌기 시작한다.

       늘어나는 이혼율, 노년층의 증가에 따른 사회보장 제도와 재정압박, 대기업의 팽창과 무분별한 소비주의 등 급작스런 사회적 변화는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해 기존의 전통과 권위에 반발하는 반문화를 생성했다. 그 동안 이성적, 비판적으로 저항문화의 위치를 차지하던 모더니즘이 제도권 속으로 흡수되면서 박물관 속에 전시된 그림이 돼버렸다.

급작스런 사회적 변화와 반문화적인 현상은 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발전하는데 좋은 토양을 마련해 줬다. 세계대전의 전쟁터가 되었던 서구의 유럽은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느라 포스트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킬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한 스튜어트 홀은 한 인터뷰에서 극단적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다.
“미국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곧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된다”

피부로 느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박 교수는 “포스트모던을 단 몇 줄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건 포스트모던이 아니다”고 했다. ‘도를 도라 부른다면 도가 아니다’는 유명한 구절의 ‘도’와 같은 존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하나의 스펙트럼처럼 온갖 색이 뒤섞여 있다.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 일부의 비난을 받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져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포스트모던의 정신은 소외된 것을 향한 또 다른 시각, 비합리주의, 차이의 인정, 진리의 상대주의 등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은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대한 건축물이나 어려운 문학을 예로 들것 없이 주변의 일상적인 예로 서울배움터의 ‘애지문’을 들 수 있다. ‘애지문’은 학교 밖 건물인지 학교 내 건물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려하는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건물이다. 그 외에도 서울배움터의 건물들은 산과 어울려 있어 4층짜리 건물을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8층인 건물도 있고 앞에서 봤을 땐 직사각형인데 뒤쪽은 원형으로 된 건물도 있다. 틀을 벗어나 반전을 주는 건물들, 포스트모더니즘의 일상적인 예다.

또 가상과 실제를 구별하기 어려운 리얼리티 쇼프로그램들은 방송국 내에서만 진행하던 몇 년 전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 커플로 이뤄져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마치 실제 연인사이 같다. 이처럼 의식하지 못하게 생활 곳곳에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은 많이 실험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90년대를 휩쓸던 ‘한물 간’ 문화적 흐름이 아니라 그 정신은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쉽게 발견 가능한 철학적 개념이다.

경계가 모호한 애지문(왼쪽)


     
앞뒤 층수가 달라보이는 법학관(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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