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는 괴로워
기러기 아빠는 괴로워
  • 최혜윤 객원기자
  • 승인 2005.10.30
  • 호수 12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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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체, 자녀 부적응문제 심각해

일러스트 이영선
박민규씨(46)는 휴일을 몹시 싫어한다. 치과의사인 그는 서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녀들이 영어를 익혀 보다 나은 기회를 얻고자  아들(16), 딸(8)과 함께 5년 전 호주로 떠났다.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 사는 박씨는 수입의 60%를 호주로 송금하고, 나머지를 천안에 계시는 부모님과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한다. 가족을 만나는 것은 아이들의 방학 등 일 년에 두세 번뿐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살고자 이민 생각도 해봤지만, 비싼 학비 및 생활비 문제와 집안의 장손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여의치 않다”며 “매일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가족들 생각이 간절하다"고 힘없이 말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자녀 유학을 위해 부인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혼자 살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숨진 지 닷새 만에 회사동료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 2003년 10월에는 딸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40대 ‘기러기 아빠’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이틀 만에 친구의 신고로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뒷바라지를 위해 홀로 한국에 남게 된 ‘기러기 아빠’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직 고소득자에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중산층까지 확대된 흔한 현상이 됐다. 이제는 생활고 때문에 비행기표  조차 살 수 없어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팽귄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생기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조기 유학생이 2만9백20명에 이르고, 유학·연수비용으로 10조원 안팎의 돈이 지출됐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부모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초·중등생이 7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기러기 아빠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러기 가족이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자녀교육 때문이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교수는 “한국 교육은 정부의 주도로 모든 것이 ‘평등’이라는 이름아래 획일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며, “이는 하향평준화를 낳고, 그나마 있는 생각과 창의력마저 말살하고 있다. 그러한 교육에 자신의 자녀를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고 말했다.

세계화 바람도 해외유학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하는 요인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가 개방되자 영어에 능통하고 외국을 잘 아는 졸업생들이 우대를 받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는 과정에서 국내기업들은 국내 일류대학 졸업자보다 중간수준의 미국대학 출신을 오히려 선호한다. 또한 가부장적인 전통적 가치관이 점차 약화되고 성공을 위해서는 가족 해체도 감수하는 결과 지향적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가치관의 변화도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중학교 졸업생으로 조기유학 가이드라인을 낮추고, 부모가 동반한다는 전제로 미국은 초등학교 3년생부터, 캐나다는 초등학교 1년생부터 유학이 가능하게 되는 등 규제가 완화되면서 기러기가족은 급증했다.

조기유학에 의한 가족해체문제는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두 아이를 미국에서 유학시킨 이정숙<SMG 대표이사>씨는 “미국 현지에서 지켜 본 결과 조기 유학 성공률이 2% 안팎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미국 조기 유학생들이 일으키는 가장 큰 문제는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의 갈등에서 오는 후유증”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떨어져 살다보니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불륜, 이혼 등 극단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기러기 아빠'들은 외로움과 경제적 괴로움을 혼자 짊어지지 않고, 기러기 아빠끼리 서로 위로하는 길을 찾고 있다. 지난 7월 모임설립 1주년을 맞은 ‘기러기 아빠 모임’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공식회원만 200여명에 달하며 오프라인 모임을 수시로 가진다. 기러기 아빠 모임’ 대표 박상빈<42ㆍ(주)제니스월드 대표>씨는 “이젠 홀로 사는 ‘기러기 아빠’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자기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화채널 구축이 강구돼야 할 시기”라며, “기러기 아빠들은 모임을 통해 현지 생활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고 골프와 등산 등 취미 생활을 함께 즐기며 인간적인 신뢰감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일등 지상주의와 과열된 교육열, 자식에 대한 유별난 애착이 낳은 기러기 가족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연구원 등의 전문가들은 “기러기 아빠가 자신을 잘 추스르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서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학교 뿐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안식년제도 도입과 연월차 휴가 보장 등으로 기러기 가족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서로 믿음과 공감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노력을 계속할 때 기러기 가족의 부작용은 조금이라도 덜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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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2 23:35:37
이 글은 기러기 아빠들과 조기유학에 의한 가족해체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교육과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를 유학 보내는 부모들의 사회적 현상을 소개하며, 이에 따른 가족간의 갈등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을 강조하며, 사회적으로도 기러기 가족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녀교육과 가족을 생각하는 인식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