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해설에 필요한 자료 준비, 하루에 200장”
“올림픽 해설에 필요한 자료 준비, 하루에 200장”
  • 유광석 기자
  • 승인 2008.08.31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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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 MBC 유도 해설위원 김석규 감독을 만나다

“사진도 찍으실거죠? 그럼 제가 해설하면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체육부실 앞에서 만난 2008 베이징 올림픽 MBC 유도 해설위원 김석규<체대ㆍ체육학부 90> 감독. 악수를 청하는 두터우면서도 단단한 손에서 20년 넘게 유도를 해온 그의 운동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김 감독의 해설위원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당시에 MBC해설위원 활동을 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전 세계 각국의 방송관계자들, 언론들이 전부 포진돼 있어서 연일 취재 경쟁을 벌였다. 분위기는 아시안게임과 천지차이였다. 하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은, 목표를 향하는 선수들의 집중력은 다르지 않았다.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옛 말이에요. 이번 올림픽 해설을 하면서 ‘올림픽에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는 선수는 없다'는 광고를 봤는데 진짜 맞는 말이에요. 물론 올림픽에 참가하는 게 굉장히 크긴 하지만 올림픽에 한번 나갔다는 것에 만족하는 선수들은 없거든요. 김 감독 역시 이번 올림픽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다. 유럽의 이름 있는 선수들부터 남미ㆍ아프리카 무명 선수들의 입상경력, 실력, 스타일 등 해설에 필요한 자료의 양은 하루에만 A4용지 200장이 넘었다. “해설자는 어떤 선수가 나왔을 때 그 선수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노력하지 않는 해설자로 칭해요. 그래서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시간적인 투자를 많이 했죠” 

이번 올림픽은 유난히 해설진들에 대한 질타가 많은 올림픽이었다. 방송 3사 모두 전문적인 해설보다는 감정적인 해설을 한다는 질타였다. “올림픽 게임 현장에 가면 어쩔 수가 없어요. 스튜디오 안에서 해설하는 거랑 TV로 시청하는 거랑 현장에 가서 그 분위기를 느끼면서 해설하는 거랑 진짜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머릿속에 뭔가 준비를 많이 하기는 하죠.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우리선수가 이기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오랜 준비의 결실 ‘딱지치기’
그렇기에 김 감독의 ‘딱지치기’ 비유는 빛을 바랬다. 비유가 적절하면서도 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딱지치기’ 멘트는 도하 아시안게임 때 이원희 선수가 일본선수를 한판으로 이겼을 때 생각났단다. 당시 그 장면을 봤을 때 딱지치기 비유를 못 했던 것이 아쉬웠기에 최민호 선수가 한판승을 따는 그 순간이 얼마나 통쾌했을까. 2년을 기다렸으니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참 적절하고 재미있는 멘트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한번 쓰고 싶었는데 최민호 선수가 순간적으로 너무 잘했고, 이거를 마지막에 안 쓰면 아깝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딱지치기라는 표현을 썼죠. 근데 ‘아, 딱지치기보다 다른 멘트를 썼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멘트는 2년 뒤에 쓸 예정이에요(웃음).”

아쉬운 선수시절, 모교의 지도자로
김 감독은 우리학교 동문이다. 체대 90학번으로 입학해 28년이 지난 현재 우리학교에서 유도부를 지도하고 있다. 김 감독의 애교심은 남다르다. 방송을 할 때도 다른 해설자들은 슈트를 입고 중계 하지만 그는 ‘우리학교 도복을 입고 해설해도 되겠냐’며 방송 관계자들에게 말했을 정도다.

“될 수 있으면 우리학교가 한번이라도 방송에 나가게 하려고 해요. 우리학교 동문 선ㆍ후배님들이 방송에서 한양대학교 도복을 보고 ‘와 우리학교 유도부에서 이번에 해설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한번이라도 더 보실 수 있잖아요” 

김 감독은 90년에 우리학교에 들어와 선수생활을 했다. 재학 중에 올림픽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떨어졌다. 하지만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는 한국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준결승까지 올라온 김 감독은 상대전적이 1승 1패인 일본 선수와 만났지만 효과 하나로 아쉽게 졌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종합경기에 출전한게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금메달을 따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김 감독은 그 후 펼쳐진 3위 결정전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따냈다. 김 감독의 아쉬운 마음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동식 선수가 풀어줬다. 같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물론 제가 땄으면 기분이 더 좋았겠지만 같은 학교 후배인 동식이가 따서 기분은 좋았죠”

그 후 올림픽에 참가하려고 다시 한 번 도전했지만 좌절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선수 활동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26살이 되던 해 주위의 지도자 선생님들이 조언으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도자의 길을 걷는 도중 99년도에 우리학교로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왔다.

“유도에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올림픽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이 있었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유도는 다시 비인기 종목으로 돌아간다. “국민들은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자기 시야에 있으면 관심을 갖겠지만 눈 밖에 나고 다른 게 시야에 들어오면 다른 쪽으로 관심이 가는게 당연하거든요. 제 생각에 유도가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일도 유도계 내부에서 해야 할 몫인거 같아요” ‘스포테인먼트’ 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금의 청소년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없다면 이번 올림픽만큼의 그만한 성적을 내기가 힘들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죠. 현재 특정 종목만 빼면 선수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 청소년들을 잘 가꿔야,  이 선수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지지기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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