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노동절이 자리잡기 까지
한국에서 노동절이 자리잡기 까지
  • 서정훈 수습기자
  • 승인 2008.05.18
  • 호수 1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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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에 개최됐다. ‘조선노동총연맹’이 주도한 이 행사는 식민지 차별정책으로 억압받던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한국의 첫 노동절은 당시 전 세계의 공동 슬로건이었던 ‘8시간 노동 요구’를 앞세워 한국 노동자들의 차별 철폐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일제의 협박과 회유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노동절 행사는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해방 이후, 노동절 행사를 주도하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를 미군정이 불법 단체로 규정, 단체가 붕괴되기에 이른다. 이후 한국의 노동절은 미군의 지지를 얻어 1946년 결성된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하 대한노총)의 주관으로 열리게 된다.

1957년, 우리나라의 노동절이 대한노총의 설립일인 3월 10일로 바뀌었다. 표면적 이유는 노동절이 공산당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니 노동자들의 참된 명절을 제정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노동절의 시련은 박정희 정권에 와서도 계속됐다.

1963년, 노동절에 ‘근로자의 날’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노동자’라는 단어가 국민들의 자주적, 민주적 정치의식을 깨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5월 1일 노동절’이 정치적 계산에 의해 ‘3월 10일 근로자의 날’로 바뀌면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노동절은 자취를 감춘 듯 했다.

하지만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1980년대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의 민주적 의식이 성숙해졌다. 노동절이 100주년을 맞은 1989년,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노동절 100주년 기념 한국 노동자 대회’가 4월 30일 개최되면서 이후 우리나라 노동절 행사는 점점 발전된 모습을 갖춰갔다. 이후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변경했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 된 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결과였다.

뒤늦게 자리 잡은 노동절 행사였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절 행사는 전 세계의 행사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고, 그 당시 정부에서 발표한 노동 전책에 반응하는 형식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노동절 행사의 경우 노동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 문제도 다룬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우문숙<민주노총·대변인실> 대변인은 “노동자들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집단이다”며 “노동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문제들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절 행사는 집회뿐만 아니라 노동절의 의미를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노동자의 가족과 함께하는 집회는 물론, 등산대회, 마라톤 대회 등 집회 형식이 아닌 축제 형식으로 개최되는 노동절 행사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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