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맘껏 배울 권리가 있다
누구나 맘껏 배울 권리가 있다
  • 남정미 기자
  • 승인 2008.03.29
  • 호수 1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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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 가는 야학 현장을 찾아서
 

힘들어진 현실만큼이나 찾아가기도 힘들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한참을 묻고 물어 그곳에 도착했다. 도착하고서도 허름한 외관이 들어가는 발걸음을 주춤하게 했다. 빛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작은 빛이 새어나온다. 며칠사이 계속되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우리학교 강의실의 10분의 1정도 되는 교실의 열기는 뜨겁다. 살결로 느껴지는 추위와 머리로 느껴지는 뜨거움 속에 울컥 눈물이 솟는 그곳, 바로 야학이다.


▲야학에 들어서며

기자가 찾아 간 곳은 우리학교 서울배움터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성동야학’이란 곳이다. 무려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첫 시작은 성동경찰서 소속 직업청소년학교였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학강(배움을 받는 사람)은 주부층이다.

야학의 현실에 대해 질문하려 했건만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저절로 야학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허름한 건물은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했고,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저런 곳에 배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상상도 가지 않을 곳이었다. 10분정도만 앉아있어도 추위에 몸이 오그라든다. 교실의 책상은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나무 책상에, 난로가 있지만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연필을 잡고 있는 손은 꽁꽁 얼고 만다. 심지어 한 학강은 ‘수업을 듣고 집에 가면 오한이 생길정도’라 표현했다.


▲힘들어진 야학의 현실

이곳의 운영자금은 성동구청의 가정복지과에서 받는 것과 강학(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내는 것, 후원금 등이 전부다. 정부가 성동야학의 경우처럼 주부층이 많은 곳은 지원해 주지 않고 청소년 배움터 쪽에만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학 학강층은 갈수록 배움을 끈을 놓친 성인이 많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성동야학의 경우 다행히 지난 분기에 정부에서 문해(글을 읽고 이해함)사업의 일종으로 지급하는 후원금을 받긴 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마저도 모든 야학에 주는 것이 아니라 운영계획을 올리면 2,3군데 야학만을 선정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지급 금액도 최대 500만원으로 한정된다. 성동야학의 경우 건물이 성동경찰서 소유라 무상으로 공급되어 이 돈을 학습용으로 쓸 수 있지만 대부분 야학의 경우 월세비용을 대기도 빠듯하다. 하지만 성동야학도 곧 왕십리의 개발바람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성동야학 강학대표 한단비<서강대ㆍ전자공학과 05> 양은 “이전비용과 이전 후의 월세비용이 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강학님들, 고맙습니다

대부분의 야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야학은 강학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금, 운영방향등과 같은 굵직한 사안들도 강학들이 결정한다. 학강들은 무엇보다 아직 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들이 고생을 하는 것이 안타깝다. 성동야학의 학강들은 입을 모아 ‘너무나 고마우신 분’들이라 얘기한다. 야학이 늦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저녁 대신 간식을 함께 먹는데, 일주일에 한번은 강학들이 직접 요리를 만든다. 하지만 성동야학의 경우 제대로 된 조리시설도 없을 뿐더러, 들어가기조차 싫은 낡은 화장실에서 설거지까지 하고 있다.

어떤 대가를 받거나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강학들은 최선을 다한다. 변수경<이화여대ㆍ사회학과 07> 양은 “처음엔 의무적으로 왔지만 나이어린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데도 겸손한 학강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변 양은 “뿌듯함만으로 강학을 할 순 없다”며 “학강들은 늦게 라도 배우기 위해 온 사람이므로 무엇보다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동야학은 우리학교 서울배움터와 가까운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해 전부터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긴 상태다. 지금은 서강대ㆍ연세대ㆍ이화여대 등지의 신촌 부근의 학생들이 멀리서 발걸음을 하고 있다. 취재를 하러 온 기자에게 야학을 하라고 권유할 만큼 이들은 강학이 절실하다.


▲배움의 길은 열려야 한다

야학을 다니게 된 경위로 대부분의 학강들은 ‘사회의 눈초리’를 꼽는다. 사회에 나갔더니 제대로 된 졸업장 없이는 대우해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늦게나마 배움의 터전을 찾았다. 일하랴, 공부하랴, 이미 머리가 굳어버린 그들에겐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변 양은 “이미 공부시기를 놓쳐버린 어른들이기에 한번 설명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3,4번 반복을 통해 ‘아’하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사회는 배움의 기회조차 제대로 제공해주지 않고 있다. 그들은 우리학교 강의실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울에는 추위에 벌벌 떨며 공부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의 꿈을 위해서라도 배움의 길은 활짝 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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