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 기본이 천대받는 나라
교양과 기본이 천대받는 나라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3.24
  • 호수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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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가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밤새 ‘나도 방화범’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렸다. 정말 그것이 한 사람의 대사회적인 복수심에서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일까 국가와 소방 당국의 안일하고 허술한 대책을 질타하는 언론과 국민들의 모습이 이러한 생각과 겹쳐지면서 죄의식은 다시 분노로 바꼈다.

우리는 왜 이러한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따지지 않고 감정적인 현상에 휘둘려 그것을 해소하고 위무해 줄 희생양을 찾는데 혈안이 돼있는가. 희생양의 피를 보고 감정이 해소되면 우리는 그것을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결은 사건의 본질을 은폐할 뿐이지 사건의 불씨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남아 있는 불씨를 진화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건에 대해 반성적인 인식을 통한 사유의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결핍돼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격을 계발하고 세련되게 하는 교양에 대한 인식의 부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교양이 단순한 지식의 풍부함과 전문적인 직업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이 풍부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교양인보다는 지식인과 전문인을 더 선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미덕처럼 돼 있다.

특히 교양인을 길러내야 할 대학이 그것의 전위에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목적은 교양인을 길러내는 것이다. 대학의 커리큘럼에 교양과목이 편성돼 있지만 그것이 교양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다.

이것은 비단 대학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교육 전반의 문제다. 교양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와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교양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교육은 국보 1호에 왜 불을 지르면 안 되는지 그것을 교양의 차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국보 1호니까,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이니까, 원형대로 복구할 수 없으니까…. 여기에 무슨 인간으로서의 품위나 격을 계발하고 세련되게 하는 깊은 의미가 내재해 있는가.

교양 부재의 인간은 언제든지 자신의 격과 품위를 떨어뜨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숭례문의 전소는 인간의 격과 품위의 전소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불타 없어진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을 다시 세워야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실물 복원이 아니라 그것이 표상하는 숭고함의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숭상하는 숭례문의 숭고함을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곧 인간의 격과 품위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교양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기본을 자각하는 것이다.
기본이 견고하면 어떤 불길에도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는다. 교양과 기본에 대한 자각을 토대로 하나하나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얹고 추녀마루를 올리면 우리가 상실한 인간의 격과 품위로서의 숭례문은 다시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재복 교수 <국문대ㆍ한국언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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