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해
낭만에 대해
  • 한양대학보
  • 승인 2008.03.24
  • 호수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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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젠 대학가에서 ‘낭만’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낭만이 뭘까. 봄기운을 머금은 캠퍼스 잔디에서 선남선녀들이 원 형태로 둘러앉아 통기타 반주에 맞춰 음주가무(?)를 즐기는 게 낭만인가. 아니면 음악 같은 풍류거리에 흠뻑 빠져 세상이 온통 그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게 낭만인가.

어쨌든 성공, 좀 더 구체적으로 풀면 학점과 스펙이라는 단어가 이미 낭만을 저만치 밀어내 버렸다. 보다 나은 학점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점점 전공서적을 마치 보물이 있을 거라는 믿음하나로 땅을 파는 사람처럼 파고 있다. 스펙의 문제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를 ‘아파트공화국’,‘자동차공화국’,‘간판공화국’ 등 ㅇㅇ공화국이라고 수식하는 걸 많이 봤지만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영어공화국’이라는 국명도 별반 이의가 있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영어 ‘광풍’이란다. 열풍도 아니고 돌풍도 아니고 ‘미친’ 수준까지 왔다는 것이다.

다 이해한다. 정말 학과공부나 토익학습이 소설 ‘청바지 돌려 입기’에 나오는 마법의 청바지처럼 나에게 잘 맞는다면 그것들을 원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행위가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면?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대학 4년을 보내는 학생들의 수가 상당한건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대학생활은 분명 낭만이다. 아니, 젊다는 게 낭만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쉬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낭만은 단지 즐겁고 신나게 노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건 그냥 노는 것이지 낭만은 아니다. 행복해야 한다. 그 것도 감미롭고 향기롭게 행복해야 한다. 지식은 쌓여가고 사상은 익어가는 이 시절을 새하얀 여유 대신 빛마저 삼켜버리는 중압감으로 가득한 도화지로 만드는 건 우리에게 젊음을 내려준 자연에게 짓는 죄다.

물론 낭만이라는 말속에는 정서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현실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분명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독서와 한번쯤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며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하면서 서서히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낭만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인생 멋있게 살았다고, 후회는 없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객관화된 수치에 너무 매달려 뒤늦게야 내 자신을 탐구하기엔 지나간 세월 앞에서 고개를 들기 힘들 것이다. 결국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게 자기만족에서 올라오는 것이라면, 낭만은 결코 뜬구름이나 잡는 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낭만은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되비쳐주는 거울이고,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라는 척도를 우리 삶에 아무 주저 없이 들이댈 수 있는 것이다. 

강지헌<법대ㆍ법학과 0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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