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 추억으로 남을 나의 왕십리
무대 뒤 - 추억으로 남을 나의 왕십리
  • 남정미 기자
  • 승인 2008.03.15
  • 호수 12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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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신입생 시절, 신촌이나 대학로처럼 호화롭지 않은 왕십리에 정을 붙이게 된 원인에는 정문 건너 나란히 서 있는 떡볶이집들이 큰 공을 세웠습니다. 소위 말하는 칼질보다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며 먹는 떡볶이를 더 좋아하는 기자는 ‘오늘 밥 뭐 먹었어’하면 ‘응, 떡볶이’하고 대답하는 일이 많았지요. 그러던 중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 두 가지를 접하게 됐습니다. 왕십리 길이 부러워하던 신촌이나 대학로처럼 멋지게 바뀐다는 사실과, 길이 만들어지는 대신 기존의 떡볶이 상가들을 모두 없앤다는 사실 말입니다.

부리나케 동료기자 3명을 이끌고 자주 가던 떡볶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들 모두 떡볶이를 좋아하는 지라 추적추적 봄비를 맞으며 나름 심각한 대책회의 끝에 도착했지요. 평소에 안면을 많이 익혀 둔 아주머닌지라 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꺼라 예상했지만 ‘인터뷰는 싫어, 할 얘기도 없어’하는 아주머니에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막힌 숨을 내쉬기 위해 일단 어묵 국물부터 마시고 주문을 했습니다. 먹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떡볶이ㆍ순대ㆍ튀김까지 평소보다 후한 양으로 주문했지요. 그 순간 머릿속엔 수천가지의 생각들이 오간 것 같습니다.

주문한 메뉴들이 나오고 마침 텔레비전에선 재밌는 드라마가 방영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각과 미각이 동시에 충족되면서 머릿속의 수천가지 생각은 일시에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아주머니와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 욕도 하고, 자연스레 없어지게 될 가게에 대해 근심도 나눴지요. 아주머니도 가게가 정확히 언제 철거될지는 모른다 합니다. 그저 구청직원에게 철거된다는 통첩만을 들었을 뿐이랍니다. 그 말을 듣는 기자들이 동시에 ‘그럼 어떡해요’라고 외쳤습니다. 원래 장사하면 안 된다고 경고를 들어왔던 터라 보상은커녕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일을 하는 내내 ‘걱정이야’를 내뱉으십니다. 기자도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아주머니 말처럼 어느 날 자고일어나면 가게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접시가 비어갈수록 아주머니와의 얘기가 점점 더 길어집니다. 꼬마김밥을 추가 주문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원래 시장 안에서 식당을 운영하셨답니다. 식당일이 너무 힘들어 몇 년 전부터 떡볶이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합니다. 오후 4시쯤 문을 열어 새벽 4시까지 왕십리의 야참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주머니가 집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6시쯤입니다. 군대 갔다 온 학생들이 아주머니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소문을 듣고 떡볶이 집으로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7~8년째 되는, 아주머니 표현으로 ‘묵은’고객입니다. 이곳에선 후한 인심은 ‘기본’ 아주머니의 재밌는 얘기들은 ‘서비스’ 입니다.

마지막 김밥 하나가 없어지고, 어묵 국물까지 모두 비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인터뷰한 게 없어 어떡해’하십니다. 평소 넉살이 좋은 한 기자가 ‘충분히 얘기 많이 들었는걸요, 호호’하고 대꾸합니다. 아주머니도 ‘이게 인터뷰였어?’하고 웃으십니다. 사실 기자는 우리가 나눈 대화를 인터뷰라 칭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자도, 아주머니도 모르게 자연스레 얘기를 나눴다는 표현이 훨씬 정감 갑니다. 마치 왕십리의 떡볶이 가게처럼 말입니다. 계산 후 나가는 기자들에게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시며 ‘내가 학생들 땜에 살어’라고 말하십니다. 기자는 속상합니다. 이제 왕십리에는 더 멋진 인테리어의 가게들이 즐비할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새벽 3시에 아주머니와 남자주인공을 욕하며 떡볶이를 먹는 왕십리의 추억은 만날 수 없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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