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학술정보관서 낭독회 갖는 「퀴즈쇼」의 김영하 작가
백남학술정보관서 낭독회 갖는 「퀴즈쇼」의 김영하 작가
  • 성명수 기자
  • 승인 2007.12.02
  • 호수 12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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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중요한 순간에 「퀴즈쇼」를 할까”

하드코어 낭독회

김영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가다. 책을 낼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내용일까”를 상상하게 한다. 스물일곱의 나이로 쓴「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피 끓는 20대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면 마흔에 발표한 「퀴즈쇼」는 20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또 다른 형식으로 독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빛의 제국」 발표와 동시에 가진 ‘낭독회’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에 제가 「빛의 제국」이라는 책을 냈을 때 당시만해도 국내에는 낭독문화 같은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 때도 이제 하드코어 낭독회라고 해서 자리에 작가 외에 사회자만 있었어요. 사회는 가수 이적씨가 봤는데 한 시간 정도 낭독을 하고 한 시간 정도 독자들의 질의를 받았어요. 그렇게 했는데 의외로 지루하지도 않고 생각보다는 훨씬 재밌었어요.”

작가는 예술적 경험의 소유자

낭독회는 주로 독일에서 활성화돼있다. 독일의 청중들은 밤에 카페 등을 찾아가 두 시간씩 작가들의 낭독을 듣고 귀가한다. 라이브 카페를 연상시킨다. 국내 작가들이 낭독회를 열기 시작한 것도 한국이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되면서 낭독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영하를 비롯해 황석영, 신경숙 같은 한국 대표 작가들은 독일에서 체험한 낭독 문화를 국내에도 전파하기 위해 낭독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낭독보다는 강연이 많았죠. 저는 작가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독자들과 예술적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작가들이 사인회 같은 것을 많이 했는데 사인회는 독자들을 줄 세우는 거잖아요. 옛날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독일에서 참 많이 배워왔죠. 독자들을 만나는 게 참 좋은 일입니다. 글을 쓰는 게 참 외로운 일이잖아요. 낭독회를 하면서 제 소설을 좋아해주는 독자들과도 만나서 그래도 내 소설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게 예술가들한테는 좋은 에너지가 되죠.”

인간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

장편소설 「퀴즈쇼」는 김영하 작가가 올해 초부터 조선일보에 연재한 내용을 엮어 발표한 책이다. 올해는 여러 작가가 동시에 연재소설을 발표하면서 ‘연재소설의 부흥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연재소설은 오래전부터 문학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작가들이 더 많은 작품을 쓰고 그 덕분에 한국의 장편소설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매우 행복한 일이다.

“지난해 제가 「퀴즈쇼」라는 단편을 하나 썼는데 좀 아까웠어요. 저는 옛날부터 퀴즈를 좋아했고 「퀴즈쇼」에 나오는 민수처럼 뒹굴면서 백과사전보기도 좋아했고요. 그리고 늘 우리는 질문들을 받잖아요. 명절 때, 너 뭐할래?(웃음)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갈 때도 면접을 보면서 질문을 받잖아요. 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질문을 던질까. 의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인간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성장해가는 존재인 것 같아요.”

작가는 정직한 글 써야 한다

김영하 작가 역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솔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배들을 봐도 문장이 좋은 소설에는 매료된 적은 별로 없고 본인 그대로의 강렬하고 솔직한 느낌의 소설을 좋아한단다. 문단에 있는 사람들은 글만 보고 살기 때문에 서로를 속일 수 없다고 한다. 정직하지 않고 꾸민 글들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쓸 때가 스물일곱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뭐랄까 피가 끓는 때잖아요. 그래서 정직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해요. 20대는 좌충우돌하는 시기였고 그런 것이 글에 나타나있고 그 시기마다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는 거죠. 내가 만약에 자기 검열을 해가지고 사람들이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했으면 어정쩡한 소설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끝없이 변화하는 작품세계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선 김영하 작가는 이제 또 다른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피 끓는 20대의 혈기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호출」 등에서 격한 이야기 전개와 구체적인 표현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스릴감을 줬다. 하지만 최근 「빛의 제국」, 「퀴즈쇼」 등을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시면 최근에 쓴 「빛의 제국」, 「퀴즈쇼」는 사실 끔찍한 이야기들입니다. 읽을 때는 발랄해 보일 수 있지만 「퀴즈쇼」를 읽고 많은 분들이 우울해 했어요. 일단 희망이 없잖아요. 사실 지금의 삶도 희망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민수라는 인물도 처음에는 밝고 명랑하게 시작하지만 결국 현실을 겪으면서 상당히 슬퍼지는, 「퀴즈쇼」는 그래서 우울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이 되면 사람들이 민수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헌책방 골방에서 살아가는 삶 외에는 희망이 없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 책들의 그런 (강하고 구체적인)표현들이 아직 소설 속에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관적 세계인식이라든지, 예전보다 조금 더 소설 속에 세련되게 감출 수 있게 된 거죠.”

독자들의 마음 움직이는 글 쓰고 싶다

‘이야기 형님’ 김영하는 올해로 등단 12주년을 맞이한다. 그 동안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문단의 권위 있는 상들을 두루 수상했다. 꾸준히 활동 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꽤 많은 마니아층도 확보했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문화전반의 폭넓은 안목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욕심과 창작에 대한 열망은 어디까지일까. 그 끝을 알기 어렵다.

“12년 전에는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으리라고는 잘 몰랐어요. 소설가들이 꿈꾸는 소설은 제가 12년 후에 꿈꾸는 소설과 비슷한데 별로 힘들이지 않으면서 쓴 것 같고 (독자들에게)설렁설렁 읽히는데 나중에 보면 상당히 감동적인, 편안하게 읽고 나면 뭔가 마음이 움직이고,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술 먹자 그러고 싶고, 그 책을 덮고 세상에 나가면 또 달라 보이고, 그리고 뭔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경지인 것 같아요. 작가가 노력한 티도 안 나고. 독자들은 작가의 노력, 고생을 사는 게 아니잖아요. 좋은 소설은 마음을 조금씩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소설이 제가 12년 후에 쓰고 있는 글이 아닐까 하고 희망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작가 약력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 발표
1996년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2004년 장편소설 「검은 꽃」 2004 동인문학상
2006년 장편소설 「빛의 제국」 2007 만해문학상
2007년 장편소설 「퀴즈쇼」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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