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감각향상법
언어감각향상법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11.12
  • 호수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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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학원 업무를 맡다보니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제2언어를 원어민처럼 하기위해서는 사춘기 전에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소위 결정적시기가설이다. 그렇다면 중국어나 일본어는 대학가서 배우기 시작했으니 그렇다 치고, 중학교 때부터 배운 영어는 왜 아직 이런 수준인가. 우리는 흔히 문법과 독해 중심의 교육 방법이 문제라고 쉽게 진단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학습자 자신에게 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란주점’을 보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없다면 당신은 언어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다. ‘단란’이란 말이 ‘주점’을 꾸며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란한 주점’이라고 해야 한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가게’를 ‘아름가게’라고 줄여 부르는 것처럼 비문법적이다.

농수산물은 원산지 표시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원산지가 그냥 ‘국내산’ 또는 ‘수입산‘으로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세계 어디에 국내산 또는 수입산 이라는 지명이 있는가. 심지어 ’살균을 매일 소독하고 있다‘는 안내판을 매달아 놓은 목욕탕도 보았다.

언어에 대한 무감각은 대학 사회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몇 년 전 총여학생회는 ‘생리 휴강은 휴강이 아니야’라는 현수막을 대대적으로 내건 적이 있다. 휴강은 교수가 하는 것이지, 학생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은 결석을 할 따름이다. 교내 언론매체에서는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하고 있는 아무개교수가 어떻게 말했다는 문장이 있었다. 역임은 과거에 어떤 직책을 맡았다는 말이지 현재 어떤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유학을 처음 갔을 때 자동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문 ‘Please leave a message!’에서 leave가 장모음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나 message 앞의 부정관사가 귀에 들리기 까지는 세월이 꾀 걸렸다. 백화점에서 젊은 엄마가 곰 인형을 보고 아이에게 ‘What's this?'라고 물었을 때, 아이의 대답은 정확히 ‘a bear’였다. 한국아이였다면 그냥 ‘bear'라고 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더 공을 들이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이 일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는 그림카드를 보여주며 그냥 bear 또는 apple이라고 하지, a bear, an apple이라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 중국어만 배운 사람이 중국가게에 가서 ‘사이다’라는 말을 몰라 한참 고민하다 결국 ‘콜라 동생’이라고 했더니 주인이 몇 초 후 알아듣고 한참 웃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치찌개의 ‘찌개’를 중국어로 뭐라 하는지 몰라 고민하던 순간 김치‘탕(湯)’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맥이 빠진 적이 있다. 찌개라는 요리법이 없는 중국에서 찌개를 국이라고 부르는 재치가 내게는 왜 없었을까.

이러한 사례들은 외국어는 정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소개한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비문법적 표현에 무심하지 말고, 미세한 표현의 차이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난관에 봉착해서는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주장하는 언어감각향상법이다. 외국어를 잘 하려면 언어감각부터 높여야 한다. 올 가을 한층 높아진 언어감각으로 외국어 학습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국제어학원장 엄익상<인문대ㆍ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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