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의, 두 마리의 토끼는 아닌지
영어강의, 두 마리의 토끼는 아닌지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09.02
  • 호수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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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주요일간지를 보니 전국의 주요대학들이 교양이나 전공강좌를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강의 비중을 점점 높일 계획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우리학교도 몇 년 전 부터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권장하고 있으며 매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제도적인 지원을 더욱 강화해가며 권장정도를 높이고 있다.

세계화 추세에 맞춰 어학연수나 영어권 나라의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국내대학생들이 영어강의와 같은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영어를 잘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인 것 같다. 하지만 필자 나름대로 소견을 말한다면 강의에서는 무엇보다도 명확한 지식전달과 이해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강의 중에 집중력을 강화시키고 강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교수들은 강의 중에 시청각자료 또는 다양한 예와 연습문제 같은 적절한 자료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식전달의 효과를 높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한국 사람들끼리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 지식전달의 효과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굳이 전문적인 실험을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같은 대학생에게 한글자막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영어권 영화를 보여주면서 영화감상문을 쓰게 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므로 영어듣기 실력이 매우 높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제 영어로 지식전달을 해야 하는 교수들의 입장에선 자기의 해박한 전공지식을 효과적으로 표현 할 수 있을 만큼 본인의 영어실력이 뒷받침 돼야 하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리 한양대의 많은 교수들의 영어실력이 유창하지만 이들에게 시간을 두고 여러 번 교정 가능한 영어논문을 쓰게 하는 것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구술영어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나 요구한다면 이는 무리이다. 더구나 영어권이 아닌 유럽이나 중국, 일본 또는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더욱 곤혹스런 일이 될 수도 있다.

영어강의 본래의 취지대로 전공도 배우고 동시에 영어도 배우면 금상첨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한 번에 한 개의 일을 수행할 때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같은 맥락에서 전공강의는 의사소통이 원활한 모국어로 진행하며 교수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둬야 수업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영어는 대학이 말하기·쓰기·듣기 등에 각각 초점을 맞춘 다양한 형태의 영어전문수업을 제공하여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향상시켜야 효과적인 영어실력 향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교수와 학생들 간에 이뤄지는 영어강의를 통해 우리의 학생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 그리고 전공지식의 이해도는 얼마나 증가 또는 감소하는 지에 대한 교육당국의 검증 없이 영어강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면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요즘은 4~5살 어린아이에게 조차 조기영어 바람이 불어 모국어인 한국말을 한참 배울 어린나이에 영어를 배우느라 어린아이들은 언어적인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혹시 요즘의 영어강의 붐이 전공지식과 영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대학가의 ‘제2의 조기영어 교육’ 바람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김재정<공대·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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