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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06.03
  • 호수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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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한양대학보 주간 이현복<인문대ㆍ철학과>교수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이쯤 되면 언제나 끝, 마지막이라는 말을 듣고 하곤 한다. 강의의 마침인 종강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지만, 이와 함께 구속의 감정도 적지 않게 다가온다. 다시 무엇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은 그래서 항상 맞물려 있다. 하긴 태생적으로 그것들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처음이 없는 마지막은 없고, 끝이 없는 시작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은 본래적으로 마지막을 잉태하고 있고, 끝은 시작에서 자연스레 생성된다. 그래서 고대 희랍의 현인들이 처음과 시작을 근원, 시원, 원리라 보았을 터이다.

뿌리가 되는 원인인 시작은 열매가 되는 결과인 끝을 야기하고, 이 마지막은 다시 처음이 되어 또 다른 끝을 생성한다. 마치 생성의 완성체인 열매가 다시 땅에 떨어져 뿌리가 되고, 이 잠재성인 뿌리가 다시 현실성인 열매를 생성하는 것처럼. 이런 순환은 무한한 계속되고, 이 무한한 순환이 바로 인간의 삶을, 자연의 삶을 이룬다.

시작과 끝이 이처럼 맞물려 있다고 해도, 처음이 마지막을 자신 안에 잉태하고 있다고 해도, 좋은 끝이 항상 좋은 시작에서 비롯되고, 처음이 나쁘면 마지막도 나쁘다고 말한다면 이는 너무 숙명적이고 그래서 좀 비인간적이다. 처음이 안 좋아도 마지막이 좋을 수 있고, 좋지 않은 끝이 좋은 시작에서 나올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싶고, 그래서 우리 삶에서 자율과 자유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한편에 남겨 놓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처음과 시작은 항상 조금 머물고,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처음은 우리에게 항상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는다. 처음과 근원에 대한 욕망은 사실 모든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자연적인 본능이다. 처음에 대해 신영복은 말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머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학기의 처음을 지나 마지막 선상에 와 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처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다시 맞이할 처음은 이전의 처음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달라야 할 것이고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래야 진보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학기에 한양대학보는 우여곡절 끝에 12면으로 시작할 것이다. 일 년 반전 수습 딱지를 막 띤 세 명의 기자와 학보 만들기를 시작한 지 3학기 만이다. 지금까지 8면내기도 버거웠던 현실을 과거의 것으로 돌리고 싶기 때문이다. 걸쭉한 한양대에 걸 맞는 한양대학보의 위상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처음이고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다가올 처음이 3학기 전의 지나간 그 처음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후자가 지우고 싶은 ‘처음처럼’이라면, 전자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처음처럼’이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끝과 마지막을, 그래서 다음의 시작과 처음을 가능하게 해 준 많은 이들에게 학보사 주간으로서 그저 감사의 고개를 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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