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적이 필요하다
우리는 적이 필요하다
  • 김보만 기자
  • 승인 2007.05.26
  • 호수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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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보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모진 말을 하는 것은 채찍을 들어줄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고 가타부타 얘기해 줄 이가 없다는 건 읽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거고 읽히지 않는다는 건 신문이 신문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자 장산곶매에 이런 글을 실었다. <한대신문의 2007년은 지난 한해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진정 독자들을 위한 신문의 초석을 닦도록 하겠다. 일간지를 어설프게 따라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 다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전처를 밟고있다.

한양대학보는 우리학교 필론을 독점하고 있다. 한양저널, 교지가 있지만 주간으로 발행되는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독점의 폐해는 익히 알려져 있다. 소비자는 형편없는 물건을 울며 겨자먹기로 사야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나는 알았는데 이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냥 ‘지기’에서 끝이 난다. 지금까지의 신문사가 그랬고 앞으로의 신문사가 그럴 거라 예상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학생들에게 진짜 알아야 할 것은 덮어둔 채 보여준거라곤 의미없는 문자의 나열은 아니었나”

같은 목표를 향해가는 경쟁자가 없다. 그게 한양대학보를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계속 지치게 만든다.
일간지의 속도를 이길 수 없다면 그 깊이만큼은 확보하자던 계획도 ‘경쟁자의 부재’ 앞에서 무산된다. 우리에겐 속보 전쟁도 과실규명의 기준도 없다. 쫒아오는, 쫒아갈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자꾸 안일하게 한다.

한양대학보는 독자의 소리에 목마르다. 매주 서른 개 가까운 기사를 내보내지만 들리는 말은 없다. 독자 투고란인 광장 면의 ‘HANYANG AGORA'는 매 주 두 개의 원고를 받는 것도 버겁다.

독자에 대한 일방적인 외침은 신문사 안의 나르시즘을 만들었다. 자기가 쓴 기사를 스스로 평가하는 평가회의 시간은 한 주의 노고를 칭하는 시간으로 변질됐고 ‘이번주도 무사히’식의 사고를 형성하고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난 몇 주동안 한양대학보는 그저 그런 기사를 8면이란 공간에 채워 넣기 바빴다. 변화가 없다.

영화「마리 앙투와네트」에서 앙투와네트는 성 안에 고립돼 살아간다. 성 안에만 있는 그녀는 백성들의 원망 섞인 울부짖음을 듣지 못한 채 사치를 일삼는다. 이 10대 소녀에게 ‘잘못됐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운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알고있다.

한양대학보의 지금이 마치 그녀와 같다. 신문사란 공간과 사람들에게 고립돼 그녀와 같은 운명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자극이 필요하다, 경쟁이 필요하다, 쓰디 쓴 독설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만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적이 돼 줄 수 있다. 그게 이 고백성 짙은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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