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언론의 난사
버지니아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언론의 난사
  • 김보만 기자
  • 승인 2007.05.04
  • 호수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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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생 30여명이 숨졌다. 범인이 한국계 1.5세대 조승희로 밝혀지자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허겁지겁 써대며 한·미 양국의 감정마찰이란 빚나간 초점을 맞췄다. 

‘반한 감정 우려’ ‘국가위상 타격’ ‘한·미 외교문제 가능성’ 이란 제목의 기사가 관련기사의 절반을 차지했고 이에 외교부는 어느 때보다 재빠르게 대처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가 크게 타격받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무고한 사람 30여명이 총에 맞아 숨졌는데 외교부는 그저 ‘이미지 관리’에만 전념했다.

이렇게 언론은 총기사건으로 차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주더니 금새 국민 안심시키기에 들어갔다. 두 번째 초점을 조 씨가 한국계는 맞지만 그래도 다행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라는 부분에 맞춘 것이다. 조 씨 앞에는 외톨이, 자폐증, 정신장애, 우울증 등의 온갖 수식어가 붙었다.

뉴스와 신문은 조 씨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주변인물들의 인터뷰를 반복해서 내보내며 그를 점차 보통 한국인의 범주에서 내쫒았다.

미셸 위, 하인즈 워드는 물론이고 성공한 한국계 인물이라면 한민족이라며 보도하던 언론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세 번째 초점은 ‘미국은 우리에게 화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원래 조 씨가 한국인이라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누차 말해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 버지니아주 주지사도 한국계에게 불이익은 없을테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 한국 언론은 자꾸 불안감만 부추겼다.

이제 신문과 뉴스에서 버지니아 총기난사 사건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상세한 현장묘사와 오늘의 보도에서 어제의 보도를 부정하던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왜’라는 의문없이 마침표를 찍는 듯하다. 사람이 죽었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사람들에 대한 추모와 ‘왜’ 조승희가 총을 들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그저 외신에서 주어주는 기사를 받아 적고 ‘어떻게’ 죽였는가를 추적하며 상처만을 더듬고 또 더듬었다.

버지니아공대 대학신문인 ‘칼리지에이트 타임스’가 19일자 1면에 '상처치유를 시작할 때(Beginning to heal)’라는 제목으로 한국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크게 실었다. 총기참극을 가장먼저 보도했던 대학신문이 그 치유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다.

사건 4일째, ‘칼리지에이트 타임스’가 이 기사를 보도하자 일제히 일반언론들도 치유를 시작했다. 작은 대학언론이 볼 수 있었던 것을 기존언론은 보지 못했던건지 아니면 특종 아닌 특종에 혈안이 되었던건지 알 수 없지만 한국언론은 속도, 신뢰, 모든 면에서 형편 없었다.

언론이 언론을 깨웠다. 그것도 대학신문이 전세계 언론이 해내지 못했던 선구자 역할을 해냈다. 앞으로 한국언론을 깨워야 하는게 우리나라 대학언론이라면 우리 한양대학보는 또 하나의 역할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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