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도 얼굴은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도 얼굴은 남긴다.
  • 윤영미 기자
  • 승인 2007.03.18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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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의 탄생과 발달

얼굴 복원(이하 복안)은 의학 분야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성형수술에서 수술 및 외상으로 생긴 치명적인 상처를 교정하기 위한 수술방법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법의인류학에서 신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 조직이 상했을 때 두개골의 형태를 이용해 얼굴을 생성하는 방법이다.

뼈만 남은 시신의 신원확인을 위해 법의인류학적 얼굴 복원이 이루어진 역사는 이미 100년이 넘는다. 1895년 스위스 해부학자 빌헬름 히스는 음악가 바흐의 두개골로 알려진 유골을 손에 넣고는 살아생전의 바흐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복안하여 사람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학계에서는 빌헬름 히스의 작업을 복안의 첫 사례로 꼽는다.

얼굴 복안 분야에서 금자탑을 쌓은 사람은 러시아의 고고학자 미하일 세라시모프(Mikhail, S)다. 미하일은 2년 동안 머리뼈의 치수와 두피의 두께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했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년 살해범 체포에 직접 기여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업적에 힘입어 소련의 과학아카데미는 성형 복원 연구소를 설립해 여러 해 동안 얼굴 복원 기술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복안기술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2001년 3월 리처드 니브<영국·맨체스터대>교수가 예수의 얼굴을 복원하면서부터다. 니브(Nib) 교수가 복원한 예수의 얼굴은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서양인의 마스크가 아닌 곱슬머리와 구릿빛 피부의 농부였다. 이런 놀랍도록 상이한 결과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니브 교수는 예루살렘에서 발굴된 1세기 유대인의 두개골의 특징을 수집하여 첨단 법의학 기법과 컴퓨터로 개략적인 예수의 얼굴을 복원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 복안은 예수 그리스도 본인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는 한계는 있지만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살던 사람의 얼굴 형태를 구체적으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성과로 여겨진다.

2005년 5월, 또다른 유명인사가 제 얼굴을 찾았다. 얼굴의 주인공은 이집트의 파라오 중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Tutankhamun)이다. 투탕카멘의 복안 작업에는 이집트·미국·프랑스의 과학자들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1700장의 정밀한 컴퓨터 단층촬영(CT)사진을 바탕으로 황금마스크의 사나이 투탕카멘의 표정을 되살려낸 것이다. 이 복안은 추정을 통해 복원한 니브 교수와 달리 실제로 미라를 측정하여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의 복안 작업은 1999년 김대건 신부의 얼굴 복안에서 시작했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최초로 순교한 역사적 인물로, 카톨릭 의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을 비롯한 5개 연구소가 공동 작업을 통해 복안작업을 진행했다. 작업 결과 김 신부는 20대 성인 남자의 얼굴 두께와 생김새의 자료를 바탕으로 살붙이기를 진행하는 방식을 통해 청동흉상의 형태로 재현됐다.

복안의 원리와 과정

특정인의 얼굴을 원형 그대로 복안하기 위해서는 얼굴 형태를 인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컴퓨터에게는 무수한 특징점의 조합이나 영상의 경계선으로 얼굴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극도로 복잡한 작업이 된다. 컴퓨터는 안경을 쓰는 것만으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얼굴 복안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얼굴의 원형을 인식하는 것이다.

바흐와 같이 대상의 얼굴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엔 별다른 인식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간단한 처리를 거쳐 두개골의 틀을 떠서 신축성이 있고 원래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실리콘 등의 소재로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작년에 <네이쳐>지에 실린 투마이(Toumai) 원인 화석과 같은 오래된 파편이나, 비행기 사고 등으로 두개골의 상당 부분이 일그러지는 등 원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된 경우엔 과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에는 첨단 기기를 동원한 X선 단층촬영 방법이나 라니티스(lanitis) 박사 등이 제안한 신축 모델(Flexible Model) 등의 체계화된 얼굴인식 시스템을 활용한다. 얼굴인식 체계 시스템에는 두개골의 각 부분에 붙어 있는 피부 및 지방층의 두께와 근육 구조가 안면형태에 끼치는 영향 및 인간의 기본적인 골격구조에 대한 기초정보가 내장되어 있다.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복안 대상인 두개골을 천천히 회전시키며 모든 각도에서 레이저 빔을 쏘아 원하는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는 레이저-컴퓨터 분석을 동시에 진행한다. 분석된 두개골은 컴퓨터 상에서 3차원 좌표로 처리되며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표준적인 치수의 두개골과 비교하며 얼굴을 복안한다.

복안기술을 비롯해 눈부시게 발전한 유전학·해부학적 성과로 인체 각 부분의 비율과 머리털의 색깔 및 형태, 심지어 두개골의 주인이 대머리인지 아닌지까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의 조직 분석을 통해 복안된 얼굴은 원래의 얼굴과 거의 근접한다. 형사사건의 경우 범인이 희생자의 사체에서 신원을 알 수 있는 안구·외이(코)·이개(귀) 등을 제거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전적인 작업을 통해 원형을 복안할 수 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치아의 마모 정도, 치아와 두개골의 봉합선 및 성형수술을 비롯한 외과 기록 등을 참고하여 정교하게 작업한다.

그러나 현재의 복안기술에도 한계는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완전히 탄화되어 원형은 물론, 유전적인 작업조차 불가능했던 3구의 시신은 끝내 그 신원을 찾지 못했다. 현재로선 일정 이상의 유전적, 해부학적 단서가 제공되지 않으면 복안작업을 시도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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