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대신문
  • 승인 2007.03.05
  • 호수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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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는 1985년 남미 안데스산맥의 준봉 시울라 그란데 서벽을 초등한다. 사이먼은 하강 도중 부상당한 조를 자일에 매달고 내려가지만, 결국 조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조가 낭떠러지로 떨어진 지 근 1시간이 지났다. 자일을 잡은 손의 힘이 점점 줄어들었다. 잡고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지금 아래로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하느님!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봐야 했다. 칼! 그래, 칼! 서둘러라. 빨리, 지금!” 생사의 기로에서 사이먼은 자일에 칼을 댄다. 조의 무게에서 벗어난 사이먼은 간신히 베이스캠프로 내려오지만 조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크레바스로 떨어진 조는 정신착란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독백을 듣는다. “아! 죽으면 그뿐, 어디로 갈지 우리는 모르네. 차가운 차단물 안에 누워 썩어갈 뿐.” 3일 동안 부러진 다리를 끌고 두 팔로 기어, 빙하 녹은 물과 개미 몇 마리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며 베이스캠프에 도달한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자일파티 사이먼에게 말한다. “넌 날 살린 거야, 알아? 너한테는 그 밤이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넌 널 비난하지 않아. 넌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 날 능선에서 내려줘서 고마워.” 조와 사이먼은 그날 밤 눈물로 텐트를 적신다. 조 심슨이 지은『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의 내용이다.

2005년 박정헌과 최강식은 졸라체 북벽 정상을 밟지만, 하산 중 최강식은 빙하계곡에 빠지고, 박정헌도 갈비뼈가 부러진다. 박정헌은 긴장된 자일의 죄임에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자일을 잘라 나라도 살까?” 사이먼의 갈등이 순간적으로 스친다. 살려달라는 후배의 절규에 선배는 온힘을 쏟아 부어 자일을 움켜주고, 후배는 감각 없는 다리로 자일에 매달린다. 3시간의 사투 끝에 지옥의 크레바스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아득하다. 아우의 발목은 부어올랐고, 형은 가슴에 아픔을 느낀다. 형이 아우를 부축하지만 결국 아우는 형 먼저 가라 한다. 박정헌은 갈등한다. “‘이건 최선의 선택이야.’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최면을 걸 듯 중얼거렸다. ‘강식은 곧 얼어 죽게 될거야. 너는 너만 살겠다고 내려가는 거라고.’ 마음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를 나무랬다. ‘그렇지 않아!’ ‘나는 다시 돌아온다. 반드시. 아니야. 이 배신자!’” 3시간 만에 빈 야크 움막에 도착한 박정헌은 의식을 잃은 채 잠에 빠지고, 최강식은 5시간을 엉덩이로 기어 박정헌과 해후한다. “형, 접니다. 혼자 남으니까 무섭데예. 그래서 기어 왔죠.”

그때 입은 동상으로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잃은 박정헌은 말한다. “천길 낭떠러지 빙벽에서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여 자일파티가 될 때 두 사람의 생명은 하나가 된다.” 박정헌이 지은 『끈.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에 있는 내용이다.

최강식은 작년 말 경상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다. “제가 입학하던 98년 당시는 학과나 동아리 사람들과의 정이 있고 대학생만의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취업시험에만 매달리고 있어 안타까웠고 그런 후배들에게 대학생활을 되찾아주고 싶어 선거에 나섰다”는 출마의 변 역시 손가락과 발가락 19개를 절단한 그답다.

인간은 끈으로 엄마 뱃속에서 나오고, 끈으로 일생을 살아간다. 그 끈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사이먼 예이츠와 박정헌의 자기보존 욕망과 갈등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조 심슨과 최강식의 삶의 의지와 관용은 차라리 초인간적이다. 그들의 끈이 부럽기만 하다.

학기 초 대학평의회, 등록금인상 등으로 소란스럽다. 한양대, 이것 역시 끈이다. 한양대 입학과 졸업, 이것 또한 끈끈한 끈이다. 끈은 고통 분담을 의미한다. 고통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야 제 빛을 드러낸다. 그리고 끈은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에게 묻고 싶다. 우리를 잇고 있는 끈들이 그저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처절한 고통의 분담인지를, 또 그 끈이 양아치 잔꾀가 아니라 진실한 순정(純情)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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