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삼일절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 김보만 기자
  • 승인 2007.03.05
  • 호수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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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해방을 위해 앞장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겠단 삼일절 날, 나는 독립유공자들의 힘든 삶을 보여주는 방송을 봤다. 매달 들어오는 20만원정도의 돈으로 근근하며 노숙자로 살아가는 그들은 누가 봐도 국가를 위해 한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과응보를 기본삼아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배워왔다. 불쌍한 제비다리 하나 고쳐준 흥부는 분명 대대손손 물려줄 보물을 얻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만든 위인과 후손들은 사람들의 관심은 잃고 가난만 얻었다.

독립유공자는 사회의 낮은 목소리다. 우리는 장애인, 저소득층, 비정규직 등 낮은 곳에 있는 소리에 무관심해왔고 이번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운동으로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가난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무학(無學)은 후대에 지독하게 이어진다. 유공자들은 무언가를 딛고 일어나려 하지만 모래처럼 무너져버리는 기반은 처음부터가 공평하지 않다.

누가 박수 받아야 할 영광의 후손들을 거리로 내몰았을까. 일등공신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당신이다. 우리가 삼일절 하면 떠올리는 건 겨우 유관순 열사, 독립운동, 태극기 이 정도가 전부다. 그것도 삼일절 이라고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이런저런 재방송을 보다보면 이 날은 덤으로 얻은 빨간날이 돼버린다. 그나마 시청률과 무관한 몇몇 프로그램이 저 구석에 있는 우리의 기억을 상기시킬 뿐이다.

한 독립유공자의 손자는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러 온 관계자에게 10년 전에도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고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그중에도 사람들의 무관심이 야속하다고.

삼일절이 한번 지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비판여론들이 쏟아진다.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형편없는 예우와 국가보훈처의 이해할 수 없는 깐깐함을 꼬집는다. 국가보훈처에선 지원금을 늘리겠다 하고 국가보훈처장이 독립유공자의 집에 방문한 사진도 하나씩 보인다. 허나 그 때 뿐 그들은 더 깊은 무관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다음 해 삼일절이 되기 전까지 어두운 조명 한번 받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삼일절 날 무얼 했나. 젊은이들은 친구와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한 인터넷 기사에선 이날 번화가를 누비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삼일절을 ‘즐거운 휴일’이라고 표현했다. 유공자들의 주머니도 비었지만 국민의 인식도 바닥났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기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제 누가 몸과 마음바쳐 충성을 다할 수 있을까. 잊혀진 영웅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늦었지만 집 앞에 태극기는 안 걸더라도 컴퓨터 바탕화면에 태극기 하나 다운받아 달고 천천히 짚어보자. 당신은 삼일절에 무엇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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