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문예상- 비평부분(1)
한양문예상- 비평부분(1)
  • 한대신문
  • 승인 2006.12.02
  • 호수 12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 : 달콤한 인생 -배고픈 달콤함을 말하다-

송경원<국문대·국문 01
                   
1. 달콤하지만 배고픈 영화
영화는 선문답 같은 대화로 시작한다. “스승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나무 때문입니까, 바람 때문입니까? 제자야, 나무도 바람도 아니고 흔들리는 것은 오직 네 마음이니라.” 이쯤 되면 영화는 제법 그럴싸한 철학적 담론에 대해 진지하게 애기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영화 <달콤한 인생>은 말 그대로 달콤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러한 선문답 자체가 중요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세련되게 만들어져 있으며 마지막의 러브스토리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표방한 액션 느와르 러브스토리라는 수식어를 그런대로 잘 따라간다. 장르적 형식에 기대어 소위 ‘때깔 나는’ 화면을 보여 주고 있는 영화는 제목같이 달콤한 초콜릿 무스를 먹는 것처럼 눈이 즐겁고 화려한 이미지를 만끽할 수 있어 고급스런 입맛을 충족시켜 주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입맛이 씁쓸해진다. 입안에 남은 달콤함, 눈가에 서려 있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들은 단지, 그것에 그칠 뿐 배를 부르게 해주지 못한다. 맛있게 보고, 즐겁게 즐기고 나와서 다시 선지국밥을 먹으러 가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 이쯤 되면 눈이 달콤한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나서도 여전히 허기진 이유가 궁금해진다. 

2. 성긴 그물 같은 서사구조
영화는 초반 10분 동안 선우의 인물 성격과 상황을 잡아준다. 거기에 멋진 액션도 더해서. 그리고 첫 선동적 사건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사건을 제시한다. 강 사장이 희수의 감시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 후 40여분이 지날 때까지 희수를 감시하는 선우의 모습을 통해 흔들릴 수 있음을 이미지로 나열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면 희수의 목덜미를 보여준다던지, 첼로를 켜는 희수를 넋 놓고 바라보는 등의 장면이다. 물론 중간 중간 백사장과 문석과의 대립구도도 잊지 않고 배치 해둔다. 여기까지는 좋은 리듬이다. 사이사이 유머가 보이는 장면이나 선우의 스타일을 더욱 멋들어지게 보여줄 장면 (다리에서에서 양아치들을 패버리는 장면. 물론 선우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것은 장면의 스타일이다.) 등을 넣음으로서 리듬과 재미, 긴장을 잃지 않는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건의 전개양상과 인물의 배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판은 다 짜여 있다. 중반 50분쯤 선우의 배신 아닌 배신을 계기로 흐름은 급전직하한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생매장까지 당하는 급전직하의 이미지는 관객에게 충분히 어떤 희열을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인물이 처한 상황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인물의 원래 위치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욱 그 효과를 발한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의문점이 발생한다. 과연 선우가 원래 위치했던 그 화려한 스카이라운지에서의 생활이 정말로 화려한 생활이었냐는 것이다. 물론 시각적인 이미지로만 봤을 땐 두말의 여지가 없다. 또한 영화상에서 색감과 조명들을 통해 그렇게 느끼도록 굉장히 세심하게  표현 되어있다. 예를 들어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의 스카이라운지는 굉장히 밝고 선명하며 색감도 짙다. 그리고 초반 선우의 느낌을 살려주려는 듯 조명 자체가 드라이해서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를 지우고 내면적으로 볼 때 선우의 위치는 나중에 본인이 스스로의 입을 통해 밝히듯이 보스를 위해 ‘개’같이 살아온 삶이다. 정작 자신이 선택한 것은 하나도 없는 가짜 삶인 것이다. 오히려 선우에게 있어 유일무이한 능동적 자유의 순간은 희수를 용서 해주는 그 한 순간이다. 그 순간에만이 선우는 강 사장의 그늘을 벋어나 온전히 스스로 힘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선우의 추락은 추락이 아닐 수도 있다. 시각적으로 굉장한 추락이지만 재생 혹은 비상의 순간을 위한 추락일 수 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중반의 가장 힘이 실리는 선우의 몰락 장면은 서사적으로 그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그리고 다음으로 선우의 탈출과정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시각적으로 높은 완성도의 비주얼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 후 총기를 얻고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물들에게 복수. 이야기는 더 이상 가지를 쳐낼 것 이 없을 정도로 단순해진다. 그 과정을 메우는 것은 화려한 액션, 조명과 콘트라스트에 의한 환상적이면서도 세련된 그러면서도 끈적끈적한 분위기이다. 이야기는 사실상 50분쯤에 이미 끝이 났다. 그 이후로는 영화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어떤 것 (주제라고 부를 수 도 있겠다.)을 끊임없이 보여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서사가 죽는다. 관객은 선우의 행동에 감정적 동조를 하기 힘들다. 종반 이후의 액션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정도로 시각을 압도하지만 향유자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왜? 왜 인물들은 여기까지 왔는가. 영화는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단지 총을 난사하고 피를 흘리며 보여 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보이는 지는 의문이다. 엔딩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이미지와 느낌들을 집약적으로 배치하면서 앞에서 다하지 못했던 설명을 하려고 한다. 이미 이미지에 취할 대로 취한 향유자가 서사적 개연성 없는 설명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지극히 단순하다. 여기에는 그 어떤 복선도 반전도 터닝 포인트도 존재 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에 제시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향해 줄기차게 달려 나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물간의 갈등이나 사건의 나열도 그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일으키기 위한 인과관계 정도로 나열되어 있다. 많은 사건과 인물 간의 갈등이 배치되어 있지만 그것들은 서사적 인과관계를 위해서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액자 식으로 전시 되어 있는 형태에 가깝다. 때문에 인물의 층위는 극단적으로 얇고 인물들을 움직이는 감정은 기분 나쁨, 억울함과 같은 일차적인 감정이며 인물들은 모두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이러한 구성과 인물의 성격은 영화가 의도하는 주제를 이미지와 스타일로 보여 주기 위함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형식을 취함으로서 관객은 서사구조의 개연성이나 이야기의 얼개 보다 장면의 화려함과 시각적인 깔끔한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분명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느와르적인 스타일을 통한 주제의 전달방식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과정에서 의도 했건 의도 하지 않았건 드라마적 리얼리티를 희생한다. 쉽게 말해 스토리라인 자체에 허술함이 발생하고 사건과 인물의 감정선 사이에 개연성이 떨어지며 영화전체를 끌고 가는 인물의 행동에 대해 마땅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에서 이러한 허점이 발생하면 이야기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인물의 행동에 대해 공감을 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재가 왜 저래?” 라며 반감을 나타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주제 자체가 그러한 여러 가지 입장을 끌어낼 수 있는 화두적인 내용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위에서 설명했듯 <달콤한 인생>은 그러한 심도 있는 철학적 명제를 놓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고자 하는 영화가 아닌 듯하다. 때문에 이러한 서사의 허술함은 스토리텔링을 자제함으로서 특정한 효과를 얻고자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애기 하도록 하자. 
일단, 서사구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결과를 영화적으로 다듬어 가는 느낌에 가깝다. 일반적인 경우 이야기에는 분명한 원인과 목적을 동기로 하여 시작하는데 반해 <달콤한 인생>에서는 그 목적과 방향 자체의 부재, 혹은 모호함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야기는 단선적이라는 약점을 띄게 된다. 관객은 강 사장이 선우에게 자신의 애인을 부탁한 순간 이미 선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전개과정에서 선우의 흔들림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납득하지만 도대체 ‘왜?’라는 의문에 부딪쳤을 때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영화는 그 답을 이야기에서 들려주지 않는다. (단, 그러한 감성을 장면의 이미지화를 통해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모든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을지라도.)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읽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봐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향유자는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그리고 선우가 보복을 당하리라는 것도 복수를 하리라는 것도 당연한 인과관계로 추측이 가능하다. 영화는 여기에 어떠한 이중 복선이나 구조를 깔아 놓지 않는다. 그저 단순하고 나르시시즘적인, 소위 ‘폼’나는 인물들의 작용, 반작용에 가까운 반응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믿음을 배신당했으니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지옥을 경험했으니 복수를 한다. 이렇듯 단순한 전개의 이야기는 서사적 개연성, 즉 인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의 부재를 낳고 이것은 관객이 이야기를 쫓는 것 자체를 부질없게 만든다. 이러한 점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객은 영화의 껍데기, 즉 비주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뒤에서 애기 하겠지만 이 영화는 미학적으로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의도한 장점을 십분 살릴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비주얼에 지나치게 실린 무게 때문에 이야기 자체를 흔들어 버린 오류를 범하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가 죽음으로서 인물들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그토록 비주얼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어떤 느낌, 즉 감정 선마저 의심 받고 만 것이다.   

3. 이미지로 각인되는 캐릭터의 힘
인물간의 갈등 구조 또한 단순하다. 선우를 중심으로 영화상에서 삼각 구도를 그릴 수 있는 관계는 선우와 강 사장, 희수 뿐 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선우와 희수 사이의 감정에 대한 설명이 모호하기 때문에 뚜렷한 구도를 띄지 않는다. 오히려 희수라는 인물은 갈등을 위한 기능적 인물에 가깝고 선우와 강 사장의 대립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 정도로 이야기는 희수라는 캐릭터에 힘을 실지 않는다. 이렇게 선우와 강 사장의 대립구도만이 서사상의 정확한 설명 없이 드러남으로서 영화에서 설명해 주지 않는 갈등의 원인 혹은 내용에 대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니게 된다. 가장 단순하게 희수를 사이에 둔 연인 사이의 감정에 대한 갈등이라고 볼 수 도 있고 선우를 믿는 보스와 믿음을 배신한 선우 사이의 이야기, 즉 유사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도 해석이 가능하며 영화 마지막에 선우가 울부짖는 것처럼 보스를 위해 개처럼 살아온 선우가 스스로 온전한 자아로서의 의지를 가지게 되고 그것이 파멸임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그 길로 걸어가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모티브로 해석이 가능한 것은 관계에서 희수라는 인물의 위치가 확실히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야기 자체의 모호성과도 연관이 된다. 서사구조에서 살펴봤듯이 단순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모호함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던 것처럼 인물관계에서도 인물의 모호함(혹은, 이야기로 명확히 설명해 주려 하지 않는 것) 때문에 인물관계에 대한 해석도 흔들리고 덩달아 이야기도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선우를 둘러싼 다른 인물과의 대립양상과 비교해 봄으로써 더욱 극명히 드러날 수 있다. 선우와 문석의 대립은 단순명쾌한 대립이다. 보스의 사랑이라는 권력적 가치를 사이에 놓고 서로 대립하는 관계이다. 문석에게는 선우와 같은 자각의 순간 차 없다. 그저 일차적인 감정에 충실하게 선우를 미워할 뿐이다. 문석은 선우의 한 단면을 형상화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매우 얇은 캐릭터의 층위를 드러낸다. 백사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권을 사이에 둔 단순한 대립관계이다. 하지만 제대로 역할을 해내지 못할 다른 인물들이 중언부언 섞여 의미를 흐리는 것에 비하면 이 단순명쾌한 대립구도가 영화에 활력을 주고 캐릭터를 살린다. 문석은 단순한 적대자의 위치이지만 그 단순함이 캐릭터에 힘을 부여하고 중반이후 몰락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될 수 있다. 백사장의 경우는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전형성을 벋어나지 못하는 문석에 비해 백사장의 위치는 자유롭다. 관점에 따라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거기에다 백사장이 캐릭터 자체가 지니는 특유의 매력(광기라 부를 수도 있겠다. 사실은 사이코지만 사이코가 아닌 척하는 이중적 인물이다. 때문에 섬뜩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두 이미지의 간극이 유머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된다.)이 단순한 구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선우에게 사건을 던져 주는 역할이면서 스스로 영화 자체의 이미지(액션느와르라고 명명한)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전체에 깔린 비주얼에 대한 의식과 맞물리면서 백사장의 캐릭터를 부각시켜준다. 서사에 굳이 신경 쓰지 않고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배우의 연기에 힘입은 탓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강하게 각인 되는 캐릭터는 역설적이게도 서사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백사장이다.
총기상은 사건을 마무리 짓는 힘을 빌려주는 역할로 나온다. 선우와의 만남을 제외하고는 영화상의 다른 인물들과는 접점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긴 시간을 차지하며 비중 있게 보이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선우의 내러티브를 따라 가는 탓도 있겠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추구하는 공간과 분위기를 형상화 한 인물이란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사적으로 인과 관계는 없지만 선우가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총기상의 역할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영화였다면 이러한 기능적 인물은 얼마든지 간단히 쳐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인생>은 이 인물과의 에피소드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것은 영화가 스토리텔링보다 비주얼텔링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위해서는 장소가 중요하고 그런 만큼 총기상의 아지트라는 장소와 총기상이라는 인물을 보여줌으로서 영화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총기상의 공간은 이질적인 공간이다.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판타지적인 냄새가 나는 공간에 가깝다. 선우가 그곳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은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이며 따라서 총기상은 인물관계 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로 등장한다. 
이렇듯 영화는 인물 관계를 얽기 설기 엮지 않고 선우를 중심으로 기능적 인물을 늘어뜨리는 전개를 보여준다. 이러한 단순한 관계는 극적 긴장감을 가지기 어려우며 이는 이야기의 단순함과도 연관해서 애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선우와 일차적인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인물들과의 사건을 차례로 나열하면서 때로는 유머를 던지고 때로는 사건을 전개해 나가며 완급을 조절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리듬감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의 인물들과 같이 지루하지 않고 캐릭터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부여해 줄 수도 있다. 파편적 인물들에 의한 파편적 상황제시(물론 달콤한 인생은 그렇게 극단으로 파편화되진 않지만 충분히 그러한 느낌을 지닐 정도로 사건을 제시, 혹은 나열하고 있다.)는 주제와의 유기적 연관성과 적절한 완급 조절을 통한 쓰임에 따라 훌륭한 서사의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에서는 그런 관계를 서사적으로 연결하기보다는 이미지, 스타일의 나열을 위한 해체 정도로 쓰고 있다.
이러한 나열식 인물 구조 또한 영화가 스토리텔링보다 비주얼텔링에 중심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또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이러한 모호함이라는 모티브가 이미지의 각인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대중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4. 느와르와 비주얼
여기서 영화의 전개방식의 중심이 되는 이미지, 스타일이라는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영화가 느와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흔히 느와르라고 하면 어둡고 차가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남성들의 영화라는 느낌이다. 명암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물의 심리(대부분 음습한 범죄의 세계나 뒤틀린 군상)를 보여주며 뒷골목, 권총, 범죄, 팜므파탈, 비등이 느와르의 단골 소재이다. 스타일이 그것 자체로 의미를 형성하고 형성된 분위기가 내러티브를 압도하는 형식의 느와르는 장르라기보다 어떠한 분위기와 스타일의 양식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느와르를 표방한 만큼 영화는 느와르의 기본에 충실하다. 서사구조보다 인물들의 분위기 스타일에 치중하고 명암과 콘트라스트를 통해 그 분위기를 십분 나타내며 양식화된 비주얼로 내러티브를 대신 하려 한다. 거기에 김지운 감독은 전에 없는 화려한 색감을 도입함으로서 비주얼적인 완성도를 극한까지 높임으로서 내러티브의 전달을 더욱 강화하려 한다. 이러한 장르적 특성을 등에 업고, 아니 장르가 먼저 인지 영화의 분위기가 먼저 인지 모를 만큼 영화에 녹아든 느와르적인 형식을 틀로 삼아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것과 흔들리는 순간에 대해 애기 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달콤한 인생>이다. 거기에다 보통 느와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액션까지 가미되어 볼거리라는 측면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장르에 묶인 탓인지 반대로 그러한 스타일에 집중하다보니 장르적 느낌이 더욱 살아난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느와르적인 느낌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야기는 흩어지고 이미지만이 강렬하게 남는다. 이미지를 통해 어떤 분위기를 전달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 수반되어야 할 기본적인 이야기의 인과성마저 끊어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때문에 훌륭하고 구축된 이미지는 산만하게 나열되어 전시 될 뿐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어떠한 감정 선을 전달하지 못한다. 김지운 감독의 전작 <장화, 홍련>의 비주얼과 비교해 볼 때 <달콤한 인생>에서 그렇게 느와르라는 장르에 집착한 것이라기보다는 비주얼 자체에 힘을 실으려고 노력한 것 같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 비주얼이 과잉강조 되면서 오히려 이미지가 파편화 되는 느낌이다. 결국에 영화를 보고 나면 뭔가 ‘멋지다‘라는 느낌은 남지만 그 이상의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이다. 아무리 멋진 그림이라도 120분 이상을 보려면 지루할 수밖에 없다.

5. 색체와 명암을 통한 공간의 성격화
여주기에 힘을 준 영화인만큼 <달콤한 인생>에서는 공간과 색감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니, 오히려 스토리 보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이미지, 스타일이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의미 전달이 가능 할 만큼 공간적으로 매우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우선, 영화 전체를 상징하는 공간은 호텔이다. 호텔은 이중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스카이라운지의 화려한 모습이 있는 반면 지하룸살롱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음습하다. 이는 선우가 머물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영화 초반 선우가 스카이라운지에서 지하룸살롱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복선이며 암시이다. 밝고 화사한 (초반에는 스카이라운지 조명이 드라이한 느낌을 준다.) 흰색과 붉은 색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어둡고 음습하며 끈적끈적한 이미지의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배치되어 있는 통로는 극 중반 선우의 추락과 잘 맞물려 떨어진다. 이러한 점을 영화에서는 미리 이미지로 그 장면을 각인 시키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와 걸어가는 천장이 낮은 복도에서는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 조명으로 선우의 얼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다가 룸살롱 뒷문으로 이어지는 어둡고 음습한 통로에는 조명이 거의 없어 얼굴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선우가 쭉 내려가는 초반의 장면은 하강 이미지와 함께 밝은 곳에서 점점 어두운 곳으로 하나밖에 없는 길을 가는 선우의 모습을 영화 전반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장소는 크게 스카이라운지, 각종 통로, 삼선교의 아지트인 수협공판장과 폐공장터 이다. 물론 그 외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모든 장소에 나름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기타 장소에 대해서는 나중에 애기하기로 하고 일단 크게 세 가지 장소가 중요하다고 한 이유는 각각의 장소가 달콤한 인생을 구가하는 선우와 나락에 떨어진 선우 그리고 그 과정을 이어주는 공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 중 특히 스카이라운지의 경우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공간이며 변화하는 공간이기에 핵심이 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tm카이라운지를 살펴보면 흰색과 붉은 색이 주요 색조를 이룬다. 붉은 색은 감정의 증폭을 나타내는 데 효과적인 색조로 후반에 판타지에 가까운 액션과 감정의 부딪치는 장소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색깔이다. 이러한 색깔 또한 초반에는 선우의 캐릭터를 나타내기 위해 드라이하고 깔끔하게 드러나다가 후반에 혈투의 장이 될 때는 전체적으로 끈적끈적하고 습기 찬 색감으로 바뀐다. 이는 선우가 가지는 감정의 상태를 화면에 그대로 구현한 것으로 보여주기를 효과적으로 실현한 공간과 색감이라 할 수 있다.
통로 또한 주요한 모티브인데 대부분 좁고 외길인 통로가 등장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초반의 시퀀스처럼 영화 전체를 상징하거나 이어주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가지지만 통로의 조명도한 밝은 색에서 약간 노란색으로 바뀌는 등 화면의 전체 톤을 조절함으로서 화면 자체만으로 인물의 상태를 알 수 있게 구성 되어 있다.
수협공판장이나 폐공장터의 경우 어둡고 습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색감을 죽이고 모노톤으로 가고 있으며 드러나는 색감은 오직 선우의 피 뿐이다. 이 공간이야말로 전통적 느와르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선우의 처절한 상황과 맞물려 공간 자체가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잡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 유일하게 화사하게 등장하는 희수의 집 같은 경우, 남성적인 인물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영화 전체에서 혹은 인물들 사이에서 오아시스 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다른 장소가 명암이 두드러지는 데 반해 희수의 집이 어둠과 빛의 충돌이 덜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강 사장이 희수를 추궁하는 장면에서 명암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을 통해 영화가 명암과 색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장면에서는 강 사장이라는 인물에게 희수의 공간이 지배당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게 그려진 장면만으로도 더 이상의 부연 설명 없이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총기상의 공간의 경우 선우가 복수의 힘을 얻는 공간이면서 현실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총이라는 물건을 다루기에 판타지적인 느낌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를 통해 향유자는 이 후에 등장할 본격적인 총격 신을 좀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감정적 기반을 마련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의미로 마지막 장명의 스카이라운지 또한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을 달리 함으로서 판타지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품어낸다. 이러한 장소의 분위기는 허구성을 드러냄으로서 향유자들이 안심하고 이미지를 소비하게끔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선우의 오피스텔 공간은 선우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선우라는 인물의 개인적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 공간은 단출하고 간단하며 회색빛의 심플한 잡기에 선우가 쇼파에서 잠든다는 설정을 통해 일상이 없음, 혹은 호텔에서의 화려한 생활이 진정 선우의 삶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와 같이 영화는 장소에 명암과 색조를 더함으로서 장소 자체를 하나의 내러티브 혹은 인물의 감정이 구현된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달콤한 인생>이 비주얼텔링을 시도하고 있다는 근거가 되며 이와 같은 장면의 구현화가 매우 높은 퀄리티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은 영화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작품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된다. 단지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통해 어떠한 정서를 얻도록 하는 것이 이러한 치밀한 공간설정의 목적이자 의의이다. 단지 지나치게 과잉된 시각적 이미지가 미처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이야기의 얼개를 끊고 있다는 것이 이미지를 단지 이미지로 한정시키는 한계로서 작용한다.

6.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 모호성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영화는 상황과 감정, 선택의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때문에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어떠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로 모호함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미지나 장면을 통해 명확한 감정을 전달 할 수도 있고 모호함의 원인이 전적으로 이미지에 주력했기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 경우 이미지의 과잉이 이야기의 얼개와 유기적으로 결합 하지 못하는 까닭에 이러한 모호함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달콤한 인생>을 전체적으로 뒤덮고 있는 정서는 이 모호함 혹은 알 수 없음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의 핵심적 근원은 바로 ‘왜‘이다. 같은 말이지만 사건과 사건의 인과관계, 인물의 행동의 동기 등이 스토리텔링으로 명확하게 제시 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발생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 하다는 것은 좋은 작품의 요소도 될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이야기가 열린 구조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콤한 인생>의 경우는 긍정적인 요소로만 작용할 수 있는 모호함이라 할 수 없다. 스토리상의 모호함은 인물의 매력을 반감 시키며 인물의 행동에 동의 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몰입 할 수 없게 한다. 결국엔 이야기 자체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단지 시각적 이미지를 즐길 뿐인 영화가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달콤한 인생>에서의 모호함은 이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보인다. 단지, 영화를 관람하는 취향의 문제에 있어서 때때로 이러한 모호함은 굉장한 매력요소로 작용 할 수 도 있다. 더구나 이 영화와 같이 시각적 완성도가 높음으로 해서 발생된 모호함이라면 더욱 그렇다.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모호함 자체가 주는 떨림이라는 모티브와도 맞물려 매력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면이 대중적이냐는 관점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의 경우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으며 상당한 자본이 투자된 영화이다. 비록, 그 영화적 완성도를 의심할 수는 없고 작품의 내재적 가치도 충분하다 할 수 있지만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에 서 있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중적 가치나 기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모호함은 비판 받을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위에도 언급 했지만 선우가 극적으로 추락하는 시퀀스에서 원래 위치해 있던 스카이라운지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해석에서 오는 모호함이 서사적 관점에서 이야기가 가지는 추락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
요컨대, 선우의 달콤했던 순간이 강 사장 밑에서 일하던 순간인지 희수의 부정을 용서해주는 순간인지 모든 파국을 정리하며 희수를 용서해 주는 순간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마지막 쉐도우복싱을 하며 커피를 마시는 순간인지 알 수 없는 그 모호함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7. 보여주기와 나열하기 -비주얼텔링의 함정-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달콤한 인생>은 장르영화로서의 틀 안에서 장르적 시공간을 만들어 놓고 서사의 깊이와 캐릭터의 층위를 거의 지운 뒤 장르적 특성에 몰두하는 영화이다. 때문에 서사의 인과성은 모호해 지고 인물의 행동에 대한 감정이입은 옅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극이 옅어지며 영화에 대한 몰입이 어려워진다. 더구나 <달콤한 인생>의 경우 엔딩 부분에 이르러 액션 장면에 밀려 하지 못했던 설명들을 하려고 함으로서 장르영화가 가지는 비주얼적 완성도를 통해 형성되었던 감정까지 흩어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비주얼적 완성도는 가히 놀랄 만 한, 그것만으로도 영화를 즐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며 이러한 비주얼의 나열을 통한 감성과 스타일의 전달은 비교적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비주얼의 완성도에 기댄 결과 일뿐 비주얼텔링의 방식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비주얼텔링은 분명히 시도해 봄직한 긍정적인 서사전개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신 또는 한 시퀀스 전체를 어떤 비주얼 자체, 혹은 액션 장면에 바침으로서 얻어지는 클라이막스의 효과는 크다. 시각적인 전달을 동해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이기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장면, 특정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남는 영화의 잔상은 스토리 이상의 힘이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단순한 비주얼의 나열만으로는 그 이상의 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영화는 엄연히 시간의 예술이다. 서사구조를 무시하고서는 영화의 효과적인 전달을 기대 하기 어렵다. 대중을 상대로 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의도적으로 서사구조를 망가뜨리는 것은 예술적 시도로 해석 될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이 비주얼의 진정성에만 기대어 서사구조와의 얼개를 소홀히 한 경우는 단순히 일회용 이미지로 소비되는 화면일 될 뿐이다. 비주얼을 통한 감정, 혹은 영화의 전달은 효과적인 방식임에는 분명하나 그것이 서사 속에 효과적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단지 나열하는 경우에는 전시된 그림에 다름이 아니다. 스타일과 이미지의 효과적 전달은 (그것이 대중성을 지향하는 영화일수록) 이야기 구조 속에 얼개처럼 구조적으로 짜여 녹아들 필요가 있다. <달콤한 인생>이 선보인 비주얼텔링은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다. 장르를 표방하면서 비주얼에 집착한 결과 오히려 장르적 외관만을 돋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맛있지만 배고픈 영화가 되 버렸다. <달콤한 인생>이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에 있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계속 되어야겠지만 조금씩 수정 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