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분 심사평 서경석<인문대·국문> 교수
소설부분 심사평 서경석<인문대·국문> 교수
  • 한대신문
  • 승인 2006.12.02
  • 호수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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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적 상상력과 디지털의 결핍


열 세 편의 작품을 심사했습니다. 예년과 달라진 점은 소설문장에 모두 공을 들이고 있다거나, 소재의 영역이 좀 더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애와 실연의 고통, 가정불화, 생활부적응과 자아경멸 등 늘 반복되어온 모티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두 편의 작품을 골라 우수작과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코딱지 벌레?를 가작으로, ?무량의 빛?을 우수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코딱지 벌레'는 낯설게 느껴지는 화법과 상상력이 특징입니다. 문학은 ‘낯설게 하기’라는 견해도 있거니와, 익숙하여 지나치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부각시키는 효과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내용은 이런 일상적 수준을 아주 넘어서는 데 있습니다. 문장 구성법도 그러려니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상상력도 그렇습니다.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생각해보는 건 현실을 견고히 인식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무량의 빛' 온라인 동호회 이야기입니다. 가작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주요한 소설적 장치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역할이 소설의 구성을 결정짓는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온라인 동호회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납니다. 모두 온라인상의 닉네임으로 출현하며 그들의 성격은 온라인상의 글의 인상으로 묘사됩니다. 현대적입니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리비도라고나 할까, 어떤 결핍이 그들을 오프라인이 모임으로 이끌었음은 당연한데 주인공이자 서른다섯 살 총각 ‘한 나무’가 서른 살의 처녀 ‘바람꽃’을 만나는 장면에 이르면 오프라인에서 만나려는 욕망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온라인의 글은 촉감과 육체와 실감이 없는 법, 이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 때문이지요. 온라인의 <사진 자랑>에서나 부분적으로 해결되지만 완전히 메워질 수는 없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보아온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 글과 말의 세계, 기호와 육체의 세계를 병치해놓은 것으로 읽히지요. 그러나 이 작품의 장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필자는 등장인물 ‘웨이’를 보며 고아원 시절 자신을 잘 돌봐주었고 피자배달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경수 형을 떠올리고, ‘바람꽃’을 보며 고아원 시절의 ‘영희’를 떠올립니다. 그들은 고아였고 외로웠으며 늘 뭔가를 갈구하는 결핍된 존재들이었지요. 오프라인의 만남은 고아원과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외롭고 늘 뭔가를 갈구하지만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비극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끝은 이렇습니다. “인생은 희극을 연출할 수 없는 것일까?” 인터넷 시대에도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이 유효하다는 인식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투고 작품들에서도 나름의 장점과 열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뽑지 못한 것을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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