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사법권력의 긴장(추미애 초빙교수 특별기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사법권력의 긴장(추미애 초빙교수 특별기고)
  • 한대신문
  • 승인 2006.12.02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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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루즈벨트 시대를 통하여 본 한국의 자화상 -

1.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법원 포위 계획
1929년 11월 뉴욕증권시장을 강타하면서 시작된 대공황으로 1932년의 대통령선거는 민주당 뉴욕주지사출신의 루즈벨트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의 과제는 당연히 뉴딜정책을 통한 대공황의 극복이었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은 연달아 뉴딜법안에 관해 무효선언을 했다. 그 중에서도 1936년 농업규제에 관한 뉴딜의 근간이라 할 농업법의 무효선언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같은 해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루즈벨트는 압도적으로 재선된다. 루즈벨트는 선거승리의 여세를 몰아 곧바로 법원에 대한 개혁안을 내놓는다. 사실 핵심은 대법원의 구성을 겨냥한 것이었다. 공석이 생길 때만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이를 고쳐 70세이상의 고령법관이 은퇴를 하지 않을 경우 대법관의 정원을 9명에서 15명으로 늘이고 대통령에게 추가로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 초안내용이었다.

그런데 민주당내에서 먼저 반란이 일어났다. 그것도 뉴딜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이면서 루즈벨트의 재선을 열심히 도왔던 몬타나주의 휠러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반대론자의 선봉에 섰다.  그러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직접 공개적으로 대법원이 뉴딜정책을 수행하는데 장애물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대법원이 재구성돼야한다고 연설에 나섰다.

한편 대법원은 뉴딜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즉 워싱턴주의 최저 임금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리고 2주 뒤에는 와그너법에 대해서도 5 : 4의 아슬아슬한 표결 차이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전히 대법원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반 뉴딜정책에 섰던 반 드반터 판사가 대통령이 법안을 거두어들일 계기를 삼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사임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법안 철회를 하지 않았고 표결은 그날 이뤄져 10 : 8로 부결됐다.
시간이 흐른 후 결국 루즈벨트는 그의 재임 중 9명의 연방대법원 판사가운데 무려 6명의 대법원판사를 임명했다. 아마 그가 조금만 더 인내하였더라면 제도자체를 바꾸려는 무모한 시도를 할 필요조차 없이 그가 원하던 대로 대법원을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미국국민들이 뉴딜정책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대법원판사들의 의견을 이해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인기 있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대법원에 대하여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포위계획의 실패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들의 마음속에 사법적 판단의 근거가 된 주장에 흠결이 무엇이 되었든 사법적 판단을 단순히 구성원을 추가로 임명하거나 정부의 지지자로 채우는 방법으로 번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2. 렌퀴스트의 사법의 정치개입 결단과 루즈벨트의 정치의 사법 간섭의 아이러니?  
위의 내용은 2005년 작고한 윌리엄 렌퀴스트(William H. Rehnquist) 연방대법원장의 저서 ‘미국 연방대법원’(THe SUPREME COURT)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전체 유효 투표에서는 부시후보에게 이겼으나 플로리다 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부시후보에게 졌다.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수작업 재개표 결정을 내렸으나 연방대법원은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부시후보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한 셈이 됐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법의 과도한 정치개입이나 정치의 사법 간섭은 마땅히 지양돼야한다. 그런데 정치의 사법간섭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루즈벨트의 사례로 보여준 렌퀴스트가 왜 사법의 정치개입이라는 모험을 감행했을까? 그것은 누군가 나서서 혼란을 수습하여야한다는 여론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무수행에 대한 높은 국민지지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개혁안이 실패했던 것도 여론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뉴딜법안을 번번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수긍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정부의 지지자로 연방대법원을 채우기 위해 꼼수를 부림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법상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3. 한국에 던지는 루즈벨트의 교훈 - 정책의 지속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헌법의 민주성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이 뽑은 권력이라는 점에서 직접 민주주의로부터 나오는 정당성이 더 주어진다. 이에 반해 사법권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서 간접민주주의에 의한 의회와 함께 헌법에 기반한다. 의회나 사법부가 대통령과 충돌할 때 직접민주주의로부터 나오는 대통령의 결정이 더 우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도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를 추진하고자 할 때, 여론은 이를 헌법상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제동을 건다.

최근의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여론이 냉담한 것도 대통령이 인사권 행사를 통하여 헌법 기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에 대한 헌법재판관의 사퇴와 새로운 헌법재판소장의 임명 방식으로 임기제한취지에 따른 3년의 잔여임기를 피하여 6년의 새 임기를 확보하는 것이 헌법의 해석상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어느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의 임기에 관한 헌법상의 해석이나 논쟁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집권세력이 그들의 정책에 대한 집권 후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헌법재판관 사퇴와 헌법재판소장 지명이라는 작위적인 수단을 동원해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돼야할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허물어버린다는데 있다.

루즈벨트의 실패와 우리의 헌법재판소장 임명좌절에서 똑같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목적의 주관적 정당성을 강조함으로써 떳떳하지 못한 수단이 옹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불리한 위기의 순간에도 우회하지 않고 그 수단이 떳떳할 때 그 목적의 정당성을 받쳐주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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