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과 그 딜레마
한총련과 그 딜레마
  • 성명수 기자
  • 승인 2006.11.25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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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4대 황제인 광종이 황제가 되기까지 수많은 역경을 거치며 끝까지 발톱을 숨겨왔다. 이미 두 명의 손위 형제가 황위에 있으면서, 황제를 둘러싼 권력암투가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탄탄한 제국의 아침을 열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장점을 모두 숨겼다. 그 결과 광종은 반대 세력으로부터 본인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었고 재위 8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개혁의 칼을 꺼내들 수 있었다.
한총련 출신의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진 분명한 사상적 지향점을 더 많은 학생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총학생회가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대학사회에서 총학생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한총련이라는 간판을 최대한 숨기거나 버려야 한다. 학생들은 한총련의 존재 차체를 싫어하고 ‘그래도 한총련에게 학교를 넘겨줄 수 없다’는 감정호소가 먹혀든다.

우리학교 선거에서도 한총련 출신 후보자들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심현수, 권중도 후보는 학생들의 동의 없이는 한총련 재가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미 끝난 안산 총학생회 선거에서 한총련 출신의 김연 후보도 한총련 활동에 대한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한총련이냐, 아니냐 논쟁은 이제 총학생회장으로서 적절하냐, 아니냐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됐다.

한총련이 학생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저 학번으로 갈수록 그 이유의 폭은 좁아진다. ‘친북성향’, ‘과격시위’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FTA, 평택철거문제 등 집회에 참여하는 행위 자체를 곱지 않게 바라본다. 한총련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지향점보다는 눈에 보이는 활동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집회 참여 행위에 대해서는 끔찍이도 부정적이다.

하지만 한총련만이 군중집회에 참여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집회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자리에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폭력시위, 과격집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총련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은 시위·집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까지 심어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위에서 잠시 언급한 저 학번들에게 특히 더 강하게 나타난다.

흔히 한총련을 운동권 학생회라고 하고 그와 반대되는 개념을 비운동권 학생회라고들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운동권이 결코 정치참여를 부정하는 학생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운동권이라 할지라도 한미 FTA가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평택 미군기지 강제이전에 반대한다면 집회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한총련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에서 비롯된 이분법적인 사고는 비운동권 학생회의 집회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이 한 마디가 무섭기 때문이다. “너희 한총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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