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과 진정한 행복
나르시시즘과 진정한 행복
  • 김소희 수습기자
  • 승인 2006.11.25
  • 호수 1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타적인 행위는 곧 이기적 행위이다', '모든 사랑은 결국 자기애의 변형에 지나지 않다'
어느 책에서 읽고 적어 둔 구절들이다. 타인에게 사랑을 주는 일조차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일로 귀결된다니…. 이번에 한양 어린이 학교 자선의 밤을 취재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람과 즐거움을 얻는 봉사 학생들을 보며 다시 위 구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봉사가 남을 위한 일 이전에 자신을 위한 일일 수 있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은 나르시시즘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하니까. 나르시시즘의 수단은 각자 다르다. 외모 외에도 노래, 춤, 학식, 말, 글, 운동, 봉사 등 우리는 그 대상을 찾아 몰두하며 만족과 희열을 얻으려고 한다. 친구나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으로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내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만족감을 찾는 나를 보며 내게는 글이 나르시시즘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내 꿈은 ‘내가 쓴 글과 이름이 실린 인쇄매체를 갖는 것’이었다. 한대신문의 기자가 되면서 소원을 일부 이룰 수 있어서 기뻤다.

하지만 단순히 기자가 ‘글 쓰는 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해였다. 기자는 글을 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야 했다. 낯가림이 심한 나에겐 모르는 이에게 다가가 질문을 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사람들이 매정하게 대할까봐 말 붙이기를 주저하다가 겨우 말을 붙인 사람에게는 거절을 당했고 더욱더 말을 걸기가 두려워져 쩔쩔 매다가 머리가 아득해졌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니,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은 인터뷰 대상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사람들은 갑작스런 부탁에 당황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답변해 주었다. 그런 모습은 내게 글 쓰는 기쁨과는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작문 실력을 늘리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 기자에 지원했던 내게 다른 목표가 생겼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 또 누군가에게 간직될 수 있는 기사를 쓰는 것.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 자체는 자기애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더욱더 사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자신을 닮은 분신을 낳으려고 한다.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드는 일, 배우고 일하며 돈을 버는 일 모두 결국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 이것이 내가 삶의 이유에 대해 찾은 첫 번째 해답이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자기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기애를 통해 얻은 행복도 일시적일 것이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이유에 대한 해답을 이제 거의 찾은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