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 한대신문
  • 승인 2006.11.20
  • 호수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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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취업 시즌이다. 강의실에는 입사 면접 때문에 결석한 학생들의 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래저래 강의에 참석한 고학년의 얼굴에도, 이것이 남이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저학년의 얼굴에도 진로에 대한 고민과 근심이 가득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청년위기(quarterlife crisis: 인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기, 즉 20대의 위기라는 의미)라는 말을 취업 문제에만 국한시켜 이해해 왔다. 물론 일정 정도 의미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청년위기란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청년세대가 가지는 광범위한 위기의식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적극성이 결여된 탓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을 설계해 나가는 데 매우 주저한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예전에 비해 미래의 진로에 대한 선택의 폭이 매우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의 선택의 결과는 의외로 특정한 분야에 치우쳐 있다.

 즉 자신의 진로 선택에 수반되는 용기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일례로 각종 고시, 의대 진학, 공무원 시험 열풍만 보아도,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직업 선택에 있어서 지속적 안정성과 개인의 안락을 위한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병폐로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집단적 열풍은 과연 쉽게 사라질 수 있을까?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평준화의 안심 속에서 안정된 기반만을 도모하려는 삶에 대해 ‘타인의 지배’라는 용어로 비판한 바 있다. 자기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그저 타인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야 불안하지 않은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자유와 모험 정신을 대변하는 20대가 역설적으로 가장 기성세대적인 삶의 패턴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에 대한 엄중한 경고일 수도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창조해 가는 용기와 결단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방법을 의미하는 영어 method는 그리스어 ‘나중엷라는 뜻의 meta와 ‘길’을 뜻하는 hodos의 합성어이다. 어원적으로 풀이하면 ‘나중에 다시 따라갈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가장 처음 어렵게 길을 개척했을 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고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방법의 본래적 의미다.

  혹시 우리는 이러한 방법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지나치게 빠져 있지 않았는가. 남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쉬운 길만 쫓아다니지 않았는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나약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서 있는 곳 그 어디 심연 아닌 곳이 있었던가! 어차피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혼자서 가리라. 그대들도 이제 나를 떠나 혼자가 되라.” 신발 끈 고쳐 매고 새롭게 길을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이미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정연재<인문대·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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