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자랑스럽게 택한다
[칼럼]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자랑스럽게 택한다
  • 손종진<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처> 교수
  • 승인 2023.06.05
  • 호수 156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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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진 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처 교수
▲ 손종진<공군사관학교 항공체육처> 교수

따스한 햇살이 나에게로 오는 계절, 하늘 위로 자유롭게 떠가는 항공기 아래에서 공군사관학교의 전경을 바라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일상의 여유를 만끽하던 중, “필승!”하는 우렁찬 경례 구호가 들려 왔다. 수업을 듣기 위해 줄 맞춰 뛰어가는 사관생도들이었다. 오와 열을 맞춰 4명, 9명의 인원이 손동작과 발동작을 맞춰 바른걸음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생도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게임 캐릭터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가지런한 옷매무새와 정결한 머리 스타일로 대동단결한 생도들의 모습을 보면, 높은 강도의 군사훈련과 학위교육에 더불어 흐트러짐 없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생도들의 엄정한 생활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는 ‘20대에 들어서는 청년들에게 단정하고 엄격한 생도 생활이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생도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며 ‘가끔은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느 날, 생도 교육 연구를 위해 사관학교와 관련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자랑스럽게 택한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사관생도 생활신조 중 하나인 이 문장은 그 뜻 그대로 ‘편하지만 옳지 못한 길보다, 힘들지만 올바른 길을 자랑스럽게 택하는 것이 사관 생도의 굳은 다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의를 위해 불편과 험난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사관생도 생활신조에서 앞선 의문들이 해소되며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험난한 정의의 길을 자랑스럽게 택했던 공군 창군 과정이 떠올랐다.

해방 이후 국내 항공계 지도자들은 미군정에 조선경비대 항공부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군정은 항공부대 창설 조건으로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교해 교육받으라고 요구했다. 당시 국내 항공계 인사들은 일본군과 중국군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의 과거 군 경력을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국내 베테랑 조종사이자 지휘관이었던 항공계 지도자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당시 최연장자인 최용덕 장군은 무려 50세였는데, 그런데도 “항공 부대가 창설된다면 병이면 어떠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白衣從軍) 정신을 잘 이해한다면 입대하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냐”며 다른 이들을 설득했다. △최용덕 △이영무 △장덕창 △박범집 △김정렬 △이근석 △김영환 7인은 지난 1948년 4월 조선경비대 보병학교 교육을 마쳤는데, 이들이 바로 ‘공군 창설 7인’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이다. 베테랑 조종사들에게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라는 요구가 무리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군 창설 7인은 공군 창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어떤 험난한 일도 감수하겠다는 정신을 실천했다.

우리도 인생의 대소사를 겪으며 다양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안일한 불의의 길을 뚫고, 자신이 생각하는 험난한 정의의 길을 자랑스럽게 택할 수 있도록, 우리 사관생도와 역사 속 위인들의 정신을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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