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서 써 내려간 시(詩)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서 써 내려간 시(詩)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3.06.05
  • 호수 1568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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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 수학 등의 이공계 학문적 지식을 문학과 결합해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 ‘이과 감성’으로 새롭게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우리 학교 동문 중에도 이런 ‘이과 감성’을 담은 시로 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공계 출신의 시인이 있다. 바로 함기석<수학과 86> 시인이다. 함 동문은 수학과를 졸업 후 자신이 가진 수학적 지식과 문학적 감수성을 융합해 여러 편의 시에 담아냈다.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오렌지 기하학」 △「음시」 등의 시집을 발간하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문학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함 동문을 만나봤다.

▲  함 동문이 시 창작을 하고 있다.
                                                        ▲ 함 동문이 시 창작을 하고 있다.

호기심을 계기로 세상에 질문하다
함 동문은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아이였다. 일상 속 자연 현상들을 보며 ‘왜 밤마다 달의 모양이 바뀔까’, ‘파도는 왜 계속 누가 간지럽히듯 움직일까’와 같은 궁금증을 품었던 그.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던 그는 이후 고등학교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수식을 통해 찾아가는 학문인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수학의 세계 안에서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그걸 풀어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수학적 과정의 누적에 의해서 결과물이 도출되는 현상들을 보면 제 안의 수많은 궁금증이 해소되는 기분도 느꼈죠.” 그는 수학이란 학문이 가진 성격이 좋아서 수학을 더 깊게 배워보고 싶었다며 본교 수학과로 진학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후 대학에서 전공을 공부하며 고대 수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단 함 동문. 그는 △아르키메데스 △탈레스 △플라톤과 같은 고대 수학자들이 대부분 수학자인 동시에 각자의 사상을 가진 철학자이자 시인이었음을 깨닫고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학자는 계산을 통해 뭔가를 도출해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 부분이 제가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던 호기심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사소한 자연현상에도 의문을 품고, 논리적인 명제들과 수식을 적용해 자연의 신비를 풀어낸 고대 수학자들을 접하며 철학적 호기심과 수학의 연관성에 주목하게 됐다.

그렇게 철학에 대한 관심이 문학, 역사 등의 인문학 전반으로 확장되며 자연스레 창작에도 발을 들이게 됐단 함 동문. 그는 이후 대학 생활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시를 쓰게 됐다고 말한다. 함 동문은 “시 창작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자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 무작정 찾아가 지도를 받기도 했어요. 교수님들께서 처음엔 수학을 전공하면서 시를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저를 보고 놀라기도 하셨지만, 오히려 좋게 봐주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문학과 수학을 한데 모아
문학과 수학을 모두 사랑한 그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졸업 직후엔 전공을 살려 한 기업체에 취업했지만, 여전히 문학을 놓을 수 없었던 그는 낮엔 직장인으로서, 퇴근 후엔 문인으로서 창작 활동을 병행하며 문학과 수학의 기로에서 고민을 반복했다. “방황하던 중 이젠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가 남을 것 같아 불안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잔 마음으로 사표를 내고 문학의 길을 택했죠.”

문학의 길을 걸으며 처음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수학이 문학과 완전히 대립되는 관계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제겐 문학 관련 학문을 전공했던 친구들은 갖지 못한 것이 있단 걸 알게 됐고, 그것이 제가 가진 강점이란 걸 깨달았어요.”라고 말했다. 이 같은 깨달음을 얻은 뒤로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기로 결심했단 함 동문은 모든 학문은 결국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에 문학 역시 학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과와 이과는 사실 서로 대립되는 반대말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이기에 논리적이고 기하학적인 상상력이 곧 인문학이나 예술과도 이어진단 것이다.

그렇게 함 동문은 자신의 시에 그의 전공 분야인 수학을 융합하게 됐다. “문학에서 저만의 영역을 특화시켜야겠단 생각에 저의 전공 분야이자 여전히 애정을 품고 있는 수학을 차용했어요. 그 과정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따로 더 공부하며 관련 지식을 쌓았는데, 그런 것들이 제 시에 상상력을 기폭시키는 장치가 됐습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학적 소재는 독자들에게 낯선 이질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는 “기존의 시에 존재하지 않던 소재인만큼 처음 접할 땐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낯섦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를 보는 이들에게 ‘함수나 기하학적 도형과 같은 수학적 소재를 이렇게 재해석해낼 수도 있구나’라는 새로움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전했다.

▲ 행과 연의 독특한 배치로 새로운 시각적 구조를 표현한 함 동문의 시다.
                                ▲ 행과 연의 독특한 배치로 새로운 시각적 구조를 표현한 함 동문의 시다.
▲ 함 동문의 시집 「음시」에서 그는 시의 목차를 ‘공간 H’로 나타낸다.
                              ▲ 함 동문의 시집 「음시」에서 그는 시의 목차를 ‘공간 H’로 나타낸다.

그의 시엔 행과 연을 활용한 독특한 시각적 구조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시집의 목차를 ‘공간’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제목이 없거나 여러 개인 시, 함수 그래프로 이뤄진 시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시도한다. 이런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이유에 관해 묻자 그는 “예술의 통념적 범주이자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하고 있는 고정적 영역에서 탈피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한계를 갱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프나 기하학적 도형 같은 것들을 시의 영역으로 끌어와 범위를 넓힘으로써 시에 얽힌 편견을 깨고,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단 걸 보여주잔 취지였어요.”라고 답했다.

▲ 제목을 빈 공간으로 나타낸 함 동문의 시다.
                                        ▲ 제목을 빈 공간으로 나타낸 함 동문의 시다.
▲ 함수 그래프로 이뤄진 함 동문의 시다.
                                         ▲ 함수 그래프로 이뤄진 함 동문의 시다.

함기석 시인이 말하는 문학
함 동문에게 시인이란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자, 세상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자’이다. 그는 “점점 더 정형화돼 가는 세상에서 시를 통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람들의 깊은 사고를 촉구하고, 사회가 다시 유연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게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시를 잘 쓰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개방적 태도가 선행돼야 해요.”라며 시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렇기에 함 동문은 개방적 태도로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일상 속 사소한 것들에서 수학적, 문학적 성격을 발견하다 보면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새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는 걸 좌표 이동으로 볼 수도 있고, 현실의 3차원 입체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추상화할 수도 있어요. 이처럼 일상적인 모습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자각하는 과정에서 감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려 해요.”

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단 것이 시가 가진 매력이라 말하는 함 동문. 그는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시인마다 그걸 풀어가는 방식이 다른데, 문학의 세계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그 모든 시각이 인정받고 공존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문학 작품을 많이 접하다 보면 하나의 대상을 다채로운 관점에 투영해 볼 수 있는 ‘프리즘’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현재 함 동문이 가진 목표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다. 계속해 오던 실험적 작업을 잠시 뒤로 하고, 근시일 내에 나올 다음 시집엔 기하학적 요소보단 좀 더 서정성이 짙은 시 위주로 담을 계획이라 말했다. “다음에 나올 시집에선 과거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정서적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기에 구조적 실험보단 시가 가진 정서적 측면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내 이름은 잉(-ing)’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 그는 “현재 진행형이란 뜻의 ‘잉(-ing)’이 저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해요. 보다 넓은 영역으로 도약하기 위해 현재까지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에 사람들에게도 멈추지 않고 뭔가를 새롭게 열어가는 사람, 개척해 나가려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대학 시절 여행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책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겪은것이 인생을 변화시켜요.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장면과 마주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던 예측할 수 없는 경험들이 모여 삶을 풍성하게 하거든요. 그러니 만약 지금 여러분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절대 미루지 말고 충동적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믿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함 동문. 정해진 것만이 정답이라 말하는 현대 사회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도약할 수 있단 함 동문의 말을 빌려 ‘남들이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찾는 여정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사진제공: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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