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그대들에게 미안함을 전합니다
[칼럼] 나의 그대들에게 미안함을 전합니다
  • 박성복<언정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 승인 2023.05.22
  • 호수 1567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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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복<언정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스승의 날에 맞춰 즐비하게 눈에 띄는 기사들. 사제 간의 정겨웠던 기억을 반추하는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 선생으로서 가슴이 먹먹한 뉴스들 천지다. 지난 14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교직 만족도가 23%까지 떨어졌으며,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한다는 응답이 20%에 그쳤다고 한다. 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비율이 87%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다가 스승의 부재를 질타하는 어느 지방지 기자의 목소리에 탄식이 터졌다. 그 기자는 다산 정약용의 「이담속찬」을 인용하면서 책을 가르치는 일보다 사람다운 인간을 길러내는 높은 품성을 가진 스승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내 연구실 문 옆에는 작은 보드가 걸려있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정겨운 사제 간으로 오해할 법한 응원 문구 몇 장이 붙어있을 뿐이다. 내겐 부끄러운 흑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며 초심으로 돌려보내는 채찍이기도 하다. 문 옆 작은 보드를 볼 때면 생애 첫 수업을 시작한 날부터 스승이 되고자 한 염치없던 기억에 귓불이 붉어진다. 그때 나는 큰형, 큰오빠라고 자칭했으며, 어느 날 “교수님이 울 엄마보다 세 살 많아요!”라며 웃던 학생을 만난 뒤로는 삼촌, 큰아빠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마지못해 격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심사평을 상당히 냉정하고 신랄하게 뱉어놓은 코로나 직전의 학술제였다. 어떤 팀의 발표 내용이 파격적이었다. 그 내용은 SNS를 통해 대학가로 퍼져나갔고 발표자들은 그들의 뜻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가혹하리만치 난도질당하는 상처를 받았다.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수업 시간에 상처받지 않을 발표의 기획과 방향에 관한 교과서적인 대안을 이야기했다. 그 얘기는 상처받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으나 그것이 또 다른 2차 가해임을 연구실 문에 붙어있는 <규탄문>이 경고하고 있었다.

일순간 허무함이 엄습했고 자괴감으로 심신이 무너지고 말았다. 학과 교수들과 학생들 간의 화해와 타협의 줄다리기가 방학이 시작되도록 이어졌다. 결국 2차 가해에 대한 나의 사과문을 개학과 동시에 벽보 형태로 붙이기로 일단락 지었으나 수긍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보드에 붙기 시작한 몇 개의 응원 문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망스럽던 어느 날, 취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평범한 일상적인 부모의 모습. 어느 부모가 상처받고 돌아온 아이들을 불러세워 조목조목 차후 대안을 이야기할까. 그저 말없이 안아주고 위로하며 먼저 편들어 주었을 것이지 미래의 대안은 차후 문제였을 터이다. 나는 늘 큰형, 큰오빠, 삼촌, 큰아빠라 칭하며 스스로 좋은 스승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저 일개 교수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2차 가해자로서의 사과문이 아닌 부모의 마음을 닮은 스승이 아니었음에 대한 반성문을 쓰고자 했다.

이제 내 연구실 문 옆에 규탄문은 없다. 그러나 그저 편들어 줬던 아이들의 응원 메모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이는 편을 들어 준 안타까움을 상기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스승이지 못했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자 함이다. 오늘 스승의 날이라 하여 나보다 더 따뜻한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안부를 슬쩍 남기고 갔다. 정말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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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1:42:23
교육자로서의 책임과 압박에 더해,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중요하다는 것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스승이 되고자 하는 다짐과 반성이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교육자들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하면서,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