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드라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3.05.19
  • 호수 1567
  • 8면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라마 플랫폼이 세계화되면서 드라마를 향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다. 본교 국어국문학과 출신의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는 국내 1호 드라마 평론가이자 대중문화 연구자로서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신만의 철학으로 작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분석하는 윤 동문을 만나봤다.

인연의 시작은 우연에서부터
그를 본격적인 드라마의 길로 이끈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연극 동아리 활동이었다. “어린 나이에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곳에서 연극에 오래 노출되다보니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후 연극반에 들어간 덕에 이런 간접적인 경험을 넘어 직접 연극을 접해볼 수 있었고, 그렇게 연극에서 희곡으로 자연스레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관심을 쭉 이어 대학에 가선 희곡을 공부했어요. 살아온 동안의 여러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현재의 저를 있게 했죠.”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윤 동문의 대학 시절은 유독 문학에 대한 우연들이 이어지며 흘러갔다.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등학교 동문 선배의 추천에 이끌려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계획에 없던 전공으로의 진학이었으나, 이 선택을 계기로 평생에 걸친 그와 문학의 인연이 시작됐다.

연극반에서의 경험으로 대중문화와 친숙하던 윤 동문은 대중문화를 문학으로 바라보지 않는 현대사회의 분위기에 의문을 품게 됐다. “대학교 2학년 전공 수업에서 고전시가에 대해 공부하던 중, ‘옛 작품들은 그만의 고유한 문학사적 가치를 인정받는데, 왜 현대의 대중문화는 문학작품이라 취급조차 받지 못할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전문적인 배움을 통해 의문을 해소하고자 본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로 향했다. 윤 동문은 고등학교 연극반으로 활동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대중문화의 한 장르인 희곡 전공을 결심했고, 국문학 석사 과정과 문학 박사 과정을 거치며 이를 깊이 알아갔다.

이후 TV의 보급으로 희곡 기반의 연극이 대중성을 잃고, 그 자리를 드라마가 대체하는 모습을 보며 매체가 변화해도 한결같이 사랑받는 장르론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어졌단 윤 동문. 그는 가장 대중적인 멜로 장르를 주제로 △방송극 △연극 △영화를 모두 포괄한 논문을 작성했고,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난 뒤 해당 논문의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했다. 이를 본 한 기자가 ‘주제가 신선하다’며 드라마 비평 관련 칼럼을 요청한 것이 그를 드라마 평론가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된 것이다.

“그때의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씩씩하게 견디는 ‘캔디’ 같은 성향을 갖고 있었고, 이런 와중에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의 구원으로 현실을 극복한단 점에선 마치 ‘신데렐라’ 같았어요. 그 당시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던 김은숙 작가의 <파리의 연인> 역시 이 ‘캔디렐라’ 설정이 적용된 작품이었죠. 이런 설정의 유행과 흥행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평론글을 시사저널에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평론 활동을 하게 됐어요.” 

드라마를 향한 남다른 애정
드라마가 가진 문학적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단 윤 동문.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 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은 반면에 드라마 쪽은 없잖아요.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를 예술 작품의 한 분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비교적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분야인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자 관련 논문들을 발표하고,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도 하지 않으니, 나라도 드라마의 가치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평론 분야를 드라마로 좁혔다고 말했다. 당시 대중문화 전반이 아닌 드라마만을 지속적으로 평론한건 처음이었기에, 그는 국내 1호 드라마 평론가로 알려지게 됐다.

그는 단순히 드라마를 좋아하고 즐기는 걸 넘어 이를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 평소 드라마 시청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드라마를 향한 상당한 애정이 없고서야 쉽지 않은 일들이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스토리가 진행되는 호흡이 길고, 물리적 분량이 많다보니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요. 가령 1시간 분량의 한 회차를 평론하기 위해선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죠. 그래서 대부분의 일상을 드라마와 함께하고 있어요. 밥 먹을 때도 계속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다가 분석을 할 만한 중요한 지점들이 있으면 재생을 멈추고 다시 돌려보며 메모를 하곤 합니다.” 쏟아지는 신작의 홍수 속에서 매번 화제가 되는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일을 하는 그. 드라마 평론가이자 연구자로서 윤 동문은 대중문화의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해 장르를 불문하고 가급적 모든 드라마를 보려한다.

“평론을 위해선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명확히 포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속 인물의 말과 행동, 사건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우리네 삶과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환기시키면서 어떤 성찰을 끌어내는지를 포착하려고 하죠. 이처럼 그는 드라마가 허구의 인물과 허구적 상황들을 연출해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도 드라마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맥락들을 보는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전했다.

윤 동문은 드라마 평론가로 활동한지 2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드라마’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좋은 드라마의 기준을 정하는 건 항상 고민스러운 지점이에요. 연출적으로 잘 만든 드라마라고 해서 꼭 좋은 드라마인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개인적으론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또 이에 대한 성찰의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에 마음이 가는 편입니다.” 

윤석진 평론가만의 ‘드라마’
이처럼 드라마에 남다른 애정과 철학을 가진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가장 최근의 동향을 반영해서, 한국 드라마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SF 장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글을 써보려 해요. 또한 1세대 방송 작가인 한운사 작가에 대한 작가론과 함께 초창기의 방송 드라마를 분석해보고 싶어요.”라 답했다. 이어 그는 평론과 연구를 넘어, 근시일 내에 자신만의 드라마 시나리오를 써 보고 싶단 개인적 목표를 밝혔다.

사람들이 자신을 한 단어로 기억한다면, ‘뿌리 깊은 나무’로 기억되길 바란단 윤 동문. 그는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어느 한 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랑하듯 떠다녔단 생각이 들어요. 처음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도 ‘연극영화과도, 방송학과도 아닌 국문과에서 왜 드라마를 하려 하느냐’란 비난을 들으며 버텼거든요.”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전 문학의 3대 장르를 시, 소설, 희곡이라 구분한 헤겔이 만약 카메라가 발명된 후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면, 당연히 이를 문학에 포함시켰을 것이라 확신해요. 그러니 제가 드라마를 문학의 영역에서 다루며 드라마 연구의 기반을 다지고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저 역시도 이젠 이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대중문화 관련 산업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에겐 ‘문학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것’을 조언했다.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고전문학엔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쌓아왔던 성찰이나 고민 같은 것들이 전부 들어있거든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달라져도 그 안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간접적으로 축적한 경험들은 향후 현직으로 나아갔을 때 큰 무기가 될 거예요.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 경험이 곧 인생을 살아가는 데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거란 윤 동문. 드라마를 연구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접해온 그 역시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앞으로도 드라마가 가진 문학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드라마 산업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길 응원한다.


사진 제공: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혜원 2023-08-01 11:43:05
대중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드라마를 문학적 가치를 갖는 예술로 평가하고자 하는 그의 시각에 공감합니다.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우리 삶과 사회적 문제들을 논의하고 성찰하는 방법은 귀중하며, 이러한 평론가의 역할은 대중문화와 예술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의 노력과 연구가 드라마 산업의 미래를 밝혀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