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당신은 세상에서 어떤 기능을 합니까?
[장산곶매] 당신은 세상에서 어떤 기능을 합니까?
  • 지은 기자
  • 승인 2023.05.01
  • 호수 156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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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 편집국장
                                                                 ▲ 지은<편집국장>

 

‘고등 문과 필수 과목’인 사회문화를 크게 관통하는 개념이 있다. 기능론과 갈등론이다. 비판적 관점이 멋있고 옳다고 느꼈던 고등학교 3학년의 필자는 갈등론이 좋았다. 그래서 “기능론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좋아. 착한 애들인 것 같아”라고 말하던 고등학교 선생님이 무언가에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기능론이 뒷동네를 비춰주지 않고 사다리를 걷어차는 이론인 것 같았다. 필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을 불리한 곳으로 밀어내고, 사회의 설움을 예쁘게 포장하기만 하는 이론인 줄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3년 후의 필자는 기능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됐다. 다시 보니, 이렇게 용기를 주는 것이 또 없었다. 기능론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이 세상을 유지하고 구성하기 위해 부여받은 고유의 기능이 존재한다. 이 기능은 세상의 구성원들에게 ‘상호의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원활하게 수행하다보면 적어도 세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요행을 바라지 않은 채 열심히 페달을 밟다 보면 나로 인해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모든 객체는 각자가 이룩해야 하는 것들이 사회 안에 명확하게 존재한다.

혹자는 기능론에 대해 ‘구조에 휩쓸려 살아가는 일개 부품에게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품으로만 살라 하는 것’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다. 기능론의 유기체 비유대로, 세상이 만약 몸 속 유기체라면 누구는 심장이고 뇌지만, 당신은 손톱밖에 되지 않는다고. 불공평하고 말도 안 되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엔 애초에 자신이 세상의 부품도 되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우울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인기 연예인도, 세상에서 가장 값진 청춘을 가진 고등학생들도, 삶을 그만두는 것을 택했다. 이쯤 되니 깊은 고민이 생긴다. 보잘 것 없는 기능을 꾸역꾸역 해내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영위할 자격이 없을까?

유명 수능 강사는 청소년들에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언제든지 사회에서 교체될 수 있고, 쓰다 버려질 수 있는 부품 같은 사람보단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가치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이 말엔 사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미 우리 모두는 대체불가능하다. 딸로서 대체불가능한 사랑을 부모님께 줄 수 있는 것. 작은 말 한 마디로 친구의 하루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 소소한 감정이라도 나눠주고 공감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가 교체할 수 없는 튼튼한 고유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불변하지 않다.

요즘 각자의 자리에서 1인분을 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고, 대단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매일 감탄하고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각자의 고유성을 뽐내며 나름의 기능을 해낼 때만큼 아름다운 순간은 없다. 필자의 엄마는 ‘필자를 키웠다는 것’ 자체로 세상에 큰 이바지를 하는 것 같아 기쁘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다. 사실 우리가 뭐가 있겠는가. 크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심장과 뇌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다. 그래도, 가까운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면. 누구와도 교체될 수 없다고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부디 세상의 소중한 기능을 하는 그 역할들을 버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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