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소중한 안식처가 감옥이 되는 순간
전세 사기, 소중한 안식처가 감옥이 되는 순간
  • 김연우 기자
  • 승인 2023.04.10
  • 호수 1564
  • 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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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거듭할수록 전세 사기로 인한 피해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집계된 전세보증금 사고는 총 5천443건으로, 2021년의 2천799건에 비해 2배 가량 늘었다. 또한 이는 372건이던 지난 2018년에 비해 15배가량 늘어난 수치로, 전세 사기 피해 건수는 매년 배로 뛰며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세 사기
문제는 전세 사기의 피해자가 대부분 2030 세대 라는 점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피해 건수 1천595건 중 2030 세대의 피해 건수는 1천 118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청년 전세 사기 피해자 5명을 인터뷰한 결과, 사기당한 매물은 보증금액이 비교적 낮은 편이며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탓에 사기를 당했다. 우선 범죄에 이용되는 전세 매물이 비교적 저렴해 구매력이 낮은 청년들이 사기 피해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지난해 상반기, 전세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제때 돌려받지 못해 HUG의 보증보험을 이용한 경우의 매물 가격은 2억 원 초과 3억 원 이하가 43.3%로 가장 높았으며 9천만 원 초과 2억 원 이하가 37.7%로 뒤를 이었다. 전세 사기 보증금이 주로 9천만 원 에서 3억 원 사이에 포진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금액대는 청년층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 속한다. 김미래 씨는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엔 서울의 월세가 너무 부담돼 대출을 받아 전세 계약을 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전세 사기를 당한 A씨도 “첫 독립에 부풀어 진행한 전세 계약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청년층은 부동산 관련 경험이 적어 중개인의 말을 그대로 믿고 계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B씨는 “보증보험이 가능하단 부동산 대표의 말에 계약을 결심했으나 알고 보니 보증 보험 가입이 거절돼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도 청년층의 적은 거래 경험이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문도<연세대 정경대학원·금융부동산학과>교수는 “과도하게 높은 전세 계약 및 사기 행위를 하는 악덕 업자들은 부동산 관련 지식과 경험이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기 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세 사기의 유형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 사기의 유형이 다양화 되고 있단 점에 주목한다. 김선주<경기대 일반대학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과거엔 중개 업자가 주인을 가장해 매물을 판매하는 허위 전세 사기와 이중 계약 등 단순한 범죄유형이 성행 했으나 요즘은 조직적인 사기가 많다”고 말했다.

근래 횡행하는 전세사기의 유형은 △바지 집주인 사기 △깡통전세 사기 △신축 빌라 동시 진행 등이 있다. 먼저, ‘바지 집주인 사기’는 기존 임대인이 주택 명의를 바지사장에게 넘겨 임차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 한다. 여기서 바지사장은 원래의 임대인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고 사기에 가담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계약이 만료된 임차인이 바지사장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해도, 가진 돈이 없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 김 교수는 “전에는 사기를 행한 임대인을 찾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기 형태였던 반면 요즘 전세 사기의 경우 바지사장만 남고 원래 집주인은 잠적해 전세금을 되돌려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2월 C씨도 이런 이유로 전세 사기를 당했다. 그는 “전세 계약 만기를 3주 앞두고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보증금 반환을 요청하자 새 집주인은 본인과는 무관한 일이라 했다”며 “전 집주인은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D씨도 동일한 수법으로 전세 사기를 당했다. 그는 “계약 및 전입신고를 진행하고 다음 날 임대인이 바뀌었다”며 “전 집주인이 번호를 바꿔 연락이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다음은, ‘깡통전세 사기’ 유형이다. 한 교수는 깡통전세를 “매매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보증금으로 전세 계약이 체결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쉽게 말해 전세값이 매매값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인 것 이다. 깡통전세는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막아 여러 집을 사는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집값이 떨어지면 전세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상환하지 않고 바로 경매에 집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경매에서는 집이 정상 매매가의 7~80%에 판매되므로, 기존 매매가와 비슷했던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 유형은 ‘신축 빌라 동시 진행’이다. 이는 △감정 평가사 △건축주 △공인중개사 △바지 사장이 합심해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우선, 감정 평가사들은 시세를 정확히 조회할 수 없는 신축 빌라의 시세를 부풀려 산정한다. 그 후 건축주는 부풀린 시세로 임차인과의 전세 계약을 체결한다. 이어 건축주는 바지 사장에게 수수료를 제공한 후 주택의 명의를 변경한다. 이 경우 시세보다 과도하게 높은 보증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바지사장의 존재로 원래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도 없다. 신축 빌라 동시 진행 사기를 겪은 A씨는 “신축 빌라를 계약했 는데, 입주 일주일 후에 집주인이 바뀌었다”고 말 했다.

전세사기 방조하는 현행 제도
현장에선 현행 제도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 전세 사기를 개인이 예방하기엔 한계가 있단 지적 또한 나온다. 먼저, 전세 계약 전에 임대인의 국세 체납 여부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문제가 있다. 추후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밀린 세금이 경매의 낙찰금에서 먼저 변제되면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E씨는 “임대인의 국세 체납 여부는 등기부등본상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며 “체납 현황 확인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HUG의 전세 반환 보증제도의 악용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기존 전세 반환 보증제도는 전세금의 70~80%까지 보장해주었으나 현재 90%까지 보증을 해주는 것으로 바뀐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전세 반환 보증 제도로 보증해주는 전세보증금의 비율이 높아지며 되려 전세사기를 통한 부동산 투기가 횡행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이라 말했다. 보증제도가 오히려 보증이 되니 괜찮을 것이라며 임차인을 속이고 전세사기 피해를 키우는 미끼로 이용된 것이다,

훗날을 위한 투자인 전세 제도가 피해자의 평생을 괴롭히는 족쇄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움: 채수민 기자
김선주<경기대 일반대학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
한문도<연세대 정경대학원·금융부동산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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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00:17
전세 제도는 훗날을 위한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데, 이를 통해 청년들의 평생을 괴롭히는 족쇄가 되지 않도록 적절한 대책과 보호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청년들이 부동산 거래에 더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