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내일을 위해 살 것
[장산곶매] 내일을 위해 살 것
  • 지은 기자
  • 승인 2023.04.04
  • 호수 1563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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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은 편집국장
                                                                 ▲ 지은<편집국장>

 

필자는 교양 수업에서 잊지 못할 사진 한 장을 접하게 됐다. 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의 중심지였던 사라예보에서 멋진 원피스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고, 고개를 똑바로 든 채 또각또각 걸어가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다. 바로 앞에 무거운 총을 든 군인이 서 있고, 생명이 온전히 숨쉬지 못할 전쟁통인데도 이 여성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여성의 태도는 마치 인간의 존엄함을 찬양하고 있는 듯 했고,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교수님께선 설명을 덧붙이셨다. “내전 중인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하루를 살아요. 멋지게 차려입고, 일터에 나가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가족과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답게 꾸미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오늘을 어떻게 살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착잡하고 우울한 공기 속에서 고개를 높이 쳐들었던 그녀가 대단하고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필자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대장암 말기로 투병하시던 할아버지는 누군가가 병문안을 오면 자신을 가꾼 후에 맞이하셨다. 칙칙한 환자복을 가리려 감색 가디건의 단추를 끝까지 채워 입고, 발뒤꿈치까지 덮는 신발을 꼭 신고 일어나서 손님을 맞으셨다.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으며, 병원에서 만나는 모두에게 부드러운 예의를 지키려 노력하신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내일을 바라보셨다. 이처럼 생사의 기로에서도 존엄을 추구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가 죽음 앞에서 겉치레와 지성이 무슨 소용이냐 손가락질해도, 이들은 옷매무새를 갖춰 부끄럼 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시간을 보다 더 가치 있게 꾸민다.

한편 죽음이 쉬워진 사회에서 24시간을 쉬이 사용하는 것이 어느덧 유행이 됐다. 수많은 이들이 비생산적인 행위들로 하루를 채우고, ‘대충 때우고 버티면서 사는거지’란 투의 생각으로 시간을 지나친다. 물론 이해한다. 필자도 가끔은 각박한 세상에 가슴께가 꾹 눌려서 허우적대며 살아갈 때가 많았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은 지쳐서 힘들고, 짧게 느껴지는 날은 아무것도 해낸 게 없는 것 같아 힘들다. 지하철역의 계단을 오르고, 다시 내려가고, 뛰어가고, 가쁜 숨을 꾸역꾸역 참아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일기장에 썼던 문장이다. 무리하게 잡은 일정을 그저 소화만 하고,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열정 없이 달려가다 보면 항상 회의감이 들었다. 사는 게 힘들어 오늘 하루만 어떻게든 해치우겠단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다음 날부터 필자는 완전히 바뀌었다. 특별한 곳을 가는 날이 아니더라도 조금 일찍 일어나 깨끗이 씻고, 머리를 손질한 후에 신중하게 옷을 골라 최선을 다해 밖으로 향했다. 오늘이 조금 우울해도 밝은 내일이 있으니 감정을 참았고, 내일을 상상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올곧은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한다. 허무주의에 빠진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우리에겐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화창하지 않더라도 도화지 같이 뽀얀 내일은 늘 손아귀로 들어올 것이며, 우리의 선택과 몸짓 하나하나가 그 위에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하루를 가꿔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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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28:21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또한, 무거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가꾸고 예의를 지키며 소중한 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하루를 채우기 위한 비생산적인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공감하며, 오늘과 내일의 가치를 깨닫는 중요성을 느낍니다. 우리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