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고용노동부와 근로자의 동상이몽
[사설]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고용노동부와 근로자의 동상이몽
  • 한대신문
  • 승인 2023.03.20
  • 호수 1562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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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고용노동부는 현행 근로 시간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개편안의 주된 내용은 일이 많을 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고, 일이 적을 땐 장기 휴가를 사용해 푹 쉴 수 있단 것이 다. 그러나 이는 초과근무와 연차 사용 저조 등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단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편안이 근로 시간 상한은 보장하지만, 연차 사용은 자율에 맡긴단 점에서 근로자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기존 52시간 근무제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초과근무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OECD에 따르면 실제 한국인의 연간 근무 시간은 1천915시간으로 평균에 비해 200시간 더 높은 수치이다. 또한 지난해 주당 52시간 초과 근무자는 295만 명으로, 전체 취업근로자 수의 10%에 달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기본 근로 시간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긴데다 초과근무 근무자 비율도 높으니 과로사의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8일 서울의 한 대형빌딩에선 62시간 동안 연속근무를 하던 노동자가 과로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일주일 최대 근무 시간인 52시간은 물론, 과로 인정기준인 60시간마저도 넘긴 채 근무했다. 52시간 근무제 하에서도 과로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근무 시간 제한을 완화한단 것은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두고,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는 꼴이다.

또한 정부가 개편안의 취지라 밝힌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 한다’도 지켜질 리 만무하다. 직장인의 절반은 52시간 제도하에서도 연차를 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인력이 부족해 다른 동료가 피해를 볼까 눈치를 보거나, 상사가 연차를 쓰지 못하게 하는 ‘연차 갑질’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20년 사람인의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차를 못 쓰는 이유로 △인력 부족으로 업 무량 과다(40.4%) △눈치를 주는 상사(23.9%)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23.8%)를 꼽았다. 한 직장인은 “상사가 연차를 승인했다가 ‘내일 기분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연차사용 허가를 번 복하더니 결국 반려했다”며 연차 갑질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하루 이틀의 연차 사용조차 어려운 와중에 정부에서 주장한 ‘10일 이상의 장기휴가’는 그저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다.

정부는 여론의 반대가 거세지자 꼬리를 내리며 재논의를 진행하겠단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이 지난 16일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개편안에 대한 보완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 발표 이전에 노동자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개편안 작성과정에서도 재계·경영계와의 소통만 이어갔을 뿐 노동자들과의 소통은 시도조차하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는 그저 던져놓고 보고 뒤엎는 식의 제도 개편을 멈춰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초과근무로 인한 과로를 하고, 누군가는 연차를 사용할 수 있을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는 말뿐인 권리 보장을 멈추고 진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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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42:43
근로 시간 제도 개편안은 초과근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고, 연차 사용의 자율성으로 인해 근로자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미 52시간 근무제 하에서도 과로로 사망하는 사례가 있으며, 개편으로 인한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미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연차 갑질로 인해 직장인들이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도 심각합니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적절한 보완을 진행해야 합니다. 더 나은 근로환경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드시 반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