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더 이상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 같아서
[장산곶매] 더 이상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 같아서
  • 지은 기자
  • 승인 2023.03.17
  • 호수 1562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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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은 편집국장
                                                                   ▲ 지은<편집국장>

늦둥이로 태어나 사랑만 받으며 자란 필자에겐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노력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과가 항상 눈 앞에 주어졌고, 어떤 분야에서든 ‘내가 남들보단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자존감이란 이름으로 우열감을 뽐내며 세상의 중심을 지켜왔다. 누군가가 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스물이 넘은 후, 점점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온 후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필자만 세상의 중심처럼 자라온 것이 아니란 것이다. 대학이란, 좋은 성과만을 내오고 사랑과 기쁨을 받으며 자라왔던 사람들끼리 모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기 공주님’인 사람들이 한데 모여 본인이 세상의 중심이지 않냐며 부딪힌다. 이에 그동안 필자에게 밝은 조명이 되어줬던 소중한 특징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리고, 필자는 그저 그런 주변부의 조연으로 밀려났다. 내가 세상의 조연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은 점점 많아졌다. 필자가 바라고 원하는 꿈들은 바늘 구멍보다 더 작은 구멍을 뚫어야 한단 걸 깨달았으며,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란 불행한 예측이 자꾸만 숨을 턱턱 누르고 있다.

‘나는 무엇이지?’, ‘누굴 위한 조연이지?’, ‘소소한 행복을 위해서 산 것인가?’ 란 생각을 하다보니, 무척 세상에게 서운할 때도 많았다.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한 선천적인 요건들은 줄을 세워보니 그리 탁월한 것도 아니었다. 이건 불공평한 것이고 억울한 거라며 슬퍼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주 오래 전부터 세상의 엑스트라로 본인을 여겨왔던 사람들이 있었다. 늘 수치로 표시되는 획일적인 수준에 미달되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엑스트라이자 주변부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아니란 걸 불평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절하시키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란 걸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사실 중심점에 컴퍼스의 바늘을 꼽고 빙 둘러서 생기는 원의 모양이 아니다. 구름처럼 형체가 모호하고, 움직이며 모양이 계속 바뀐다. 구름 속 모여있는 물 알갱이처럼 하나하나의 사람들이 엉키고 뭉쳐 세상을 이루는데, 여기서 누군가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한다면 서로에 대한 처신이 해로워진다. 각 알갱이들끼리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각별히 고려하고, 서로의 화학식에 녹아들어 몽글몽글한 구름을 이뤄내야 한다.

‘나는 무엇이지?’란 1차원적인 고민보단, ‘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지?’, ‘누굴 위해 본 적은 있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엑스트라마냥 보잘 것 없어보였던 사람도, 조연도 못 되어서 무대 밖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사실 구름의 한 부분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화학식을 채워주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이다.

세상의 중심이 되기보단 관계로 이루어진 나에게 더 집중해보려 한다. 조연이라며 우울해하지 않고, 내가 딸로서 어떤 삶을 사는지, 친구로서 어떤 말을 하는지에도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혹자는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사색하고 눈을 깜빡이는 주체가 자신인 한,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다. 온 세상이 나를 주변부로 밀어붙이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그 주변부에서의 구름을 만들어가며 나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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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48:21
대학에서는 좋은 성과만으로는 자아를 정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성장하려는 결심이 보입니다. 더불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결심과 성장을 경험하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솔직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사들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