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신이 죽었는가?
[장산곶매] 신이 죽었는가?
  • 지은 기자
  • 승인 2023.03.14
  • 호수 1561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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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편집국장>

 

신 따위는 필요 없을 정도로 세상은 먹고살 만해진 듯하다. 먹고 사는 게 가끔 버겁지만 아사할 걱정이 든 적은 없고, 어느 날 갑자기 몹쓸 병으로 콱 죽을 걱정을 한 적도 없다. 하루에 한 시간만 최저 임금 9천620원을 받고 일한다고 해도, 한양대학교 학생 식당에서 3천600원짜리 치즈돈가스를 두 번이나 먹을 수 있다. 오래된 과거, 언제 죽을지 몰라 그저 하루를 버티며, “제발 올해 1년을 책임져주세요” 하며 온갖 신을 섬기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무신론자가 ‘신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야금야금 모아 책을 출판해낸다. ‘절대적 이성’이 무엇인가, 인간의 명예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지성인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에 종교를 열성 있게 믿는 사람들은 비하 받고 있고, 자신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산하며 ‘직접’ 책임지는 사람들이 우등한 것으로 고려된다. 원인과 결과가 극명하게 분석되는 것만 믿고, 인간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중시하는 현 세계관에서 종교가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부흥하고 있다. 미국 켄터키주의 한 대학교에선 312시간 동안 기독교 예배가 끊이지 않고 이뤄졌고, 인도에선 불교 예배에 10만 명이나 모였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가 재부흥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을 믿는 종교도 미어터지게 응원받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을 배반한 사람들’에선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을 교주로 숭배하는 종교가 구체적으로 다뤄진다. 해당 종교들은 모두 현재 숨을 쉬고 피가 돌고 있는 미약한 육체를 지닌 ‘사람’을 신으로 섬기고 있다. 누군가는 신이 죽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신이 단순히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각 대학엔 ‘동아리 위장 JMS’ 경보가 울려 퍼졌고, 신천지의 신도 수는 10만이 훌쩍 넘어간 지 오래다. 사주팔자와 타로를 보고, 교회에 다니고, 절에 공양미를 내는 사람들을 ‘비과학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세태에서 ‘사람을 숭배’하는 종교가 흥행한단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할 지도 모른다. 왜, 도대체 무슨 일로 종교는 번성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엔 운과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더더욱 많아지고 있다. 전염병이 창궐해 호흡기를 천으로 막고 다녔고, 지진으로 인해 만 명이 ‘무작위로’ 하루아침에 죽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유명 연예인이 살고 있는 130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수는 없으며, 밤낮을 공부하며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 자꾸만 시험에 떨어지고, 취업에 실패한다. 철저한 노력과 계획으로는 되지 않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세상이 과학적으로 변할수록, 사람의 인생엔 과학으로 계산할 수 없는 우연이 큰 파도를 만들어 내니 그 앞에 선 앙증맞은 인간은 비참해진다.

필자는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 진화론이고 유전자가 어떻고를 떠나서, 내 운명 하나 노력으로 바꾸기 어려운 부족한 인간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에 공감하고자 한다. 오죽하면 나이 든 할아버지를 인생의 구원자로 믿었을지,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인생 전체를 한 사람에게 배팅했을지.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필자 또한 신을 믿고, 나약한 필자의 하루를 신에게 온전히 맡긴다. 신은 죽을 수도 없고, 누군가가 죽일 수도 없다. 철저하게 계산되지 않는 세상에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신’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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