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폭력, ‘돌려 말하기’가 필요하다
미디어 속 폭력, ‘돌려 말하기’가 필요하다
  • 신성경
  • 승인 2023.03.02
  • 호수 1560
  • 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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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폭력 콘텐츠의 유행
최근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처절한 복수극’으로 화제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3인칭 복수」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과 같은 폭력 소재의 콘텐츠들이 각 부문에서 인기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콘텐츠 속 자극적인 폭력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해당 작품들은 폭력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해 시청자들 사이에선 차마 전편을 다 보지 못하고 시청을 중단했다거나 불쾌함을 느꼈다는 등 폭력묘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 존재했다. 

일상까지 침범한 폭력 묘사
뿐만 아니라, 콘텐츠 속 자극적인 장면만 잘라 편집한 일명 ‘요약본’이나 ‘짤’ 등이 유튜브와 틱톡처럼 어린이도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 해당 콘텐츠는 △어린이와 노인이 피를 흘리며 얻어맞는 장면 △잔인하게 폭행하는 장면 △학교 폭력 가해자 남학생들이 여학생의 옷을 벗겨 촬영하는 장면 등이 여과 없이 등장하는 식이었다. 또한 실제 SNS상에선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하거나 ‘000메이크업’ 같이 주인공의 화장과 스타일을 모방한 각종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심지어 드라마 속 대사를 인용한 졸업 축하 현수막이 제작돼 교내 곳곳에 걸리는 등 청년들 사이에선 폭력 소재 드라마 자체가 ‘밈(meme)’화 되고 있다. 이렇듯 자극적인 폭력 묘사는 우리 일상 속까지 스며들어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가고 있다.

폭력 묘사에 물든 시청자
이러한 자극적인 폭력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실제 피해자인 시청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할 수 있다. 한양행복드림상담센터 상담운영팀 관계자는 “이전에 겪었던 트라우마와 유사한 경험을 할 때, 심리적 고통이나 생리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며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겐 관련 소재의 드라마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해 PTSD 증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송석주 영화평론가는 “폭력 소재의 콘텐츠에서 누군가의 불행을 재현할 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재현의 윤리’를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사람들의 모방심리를 불러일으켜 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에서는 영화 「조커」 속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의 모습을 모방한 흉기난동 및 방화 등 무차별 범죄가 수차례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9년, 살인을 저지른 한 범죄자가 평소 시청했다고 밝혀진 드라마 「킬링 이브」 속에 등장한 범행 수법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의 범죄를 저질러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양행복드림상담센터 상담운영팀 관계자는 “폭력 소재의 콘텐츠는 공격적인 생각과 행동을 증가시킨다”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에 자주 노출될 경우, 과몰입을 유발해 심하게는 폭력이 정당하단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강신규<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은 “폭력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는 일명 ‘폭력 시나리오’는 모방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여전한 단골소재, 폭력 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 장면은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배경엔 대표적으로 OTT플랫폼의 낮은 심의기준이 있다. OTT플랫폼은 방송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의 받는 TV방영 콘텐츠완 달리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의를 받는다. 이 때문에 TV방송 기준으론 19세 판정을 받아야 할 장면이 OTT플랫폼에선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오는 3월 시행예정인 자율등급제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지정받은 OTT플랫폼 사업자는 영상 콘텐츠 공급을 자율 심사할 수 있게 된다. 강 연구위원은 “사업자가 직접 규제하면 콘텐츠를 제공하는 입장에선 자유로워지지만 폭력적인 작품이 양산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효과적인 작품 전개를 위해선 폭력에 대한 자극적인 연출이 불가피하단 연출자의 입장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폭력 장면을 연출한 감독들은 폭력성 논란을 두고 ‘어쩔 수 없다’며 입을 모았다. 실제 사회 문제를 꼬집는 현실적인 전개를 위해 이런 장면은 불가피하단 것이다. 

간접적으로 전달해도 충분해 
한편 폭력을 적나라하게 전개하지 않고도, 작품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실제 가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폭력상황을 암시하거나 피해자의 아픈 과거를 간접적인 대사와 분위기를 통해 전달한다. 먼저 영화 「벌새」는 주인공 은희의 오빠가 은희를 때리는 장면에서 소리만으로 폭력이 일어났음을 암시하고, 은희와 지숙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공통된 폭력 상황에 놓여 있음을 전달한다. 또 다른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선 ‘위안부’ 피해자인 옥분의 아픈 과거가 오로지 대사로만 묘사된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지나치게 상세히 연출해 잔인하고 선정적이란 비판을 받는 기존의 영화완 확연히 다른 점이다. 

전문가들은 폭력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지양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은다. 송석주 영화평론가는 “두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 자체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시대와 상황을 견디고 버틴 주인공의 이야기에 초점을 뒀다”며 “미디어 속 폭력을 묘사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영화의 자극과 쾌락이 주제나 의미보다 앞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처럼 폭력의 잔혹함을 상세히 보여주지 않아도, 간접적 표현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시청자 모두가 고통 없이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돌려 말하기’가 필요하다.

시청자가 마주할 폭력을 생각하며, ‘돌려 말해야’ 
앞으로 미디어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는 미디어 시청만으로도 의도치 않은 폭력을 경험하거나 이로 인해 괴로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력장면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얼룩진 현실보다 시청자의 기억에 새겨진 폭력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도움 : 강신규<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송석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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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4:14:34
폭력을 다루는 작품은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전개를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묘사해야 하는 연출자들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폭력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작품의 주제나 의미를 더 강조하고, 시청자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품을 제작해야 합니다. 미디어는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모든 시청자가 고통 없이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