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당신을 당당하게 사랑하도록
[장산곶매] 당신을 당당하게 사랑하도록
  • 지은 기자
  • 승인 2023.03.02
  • 호수 156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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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은 편집국장
                                                                    ▲ 지은<편집국장>

 

필자는 미장센이 아름다운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의 화면에 드러나는 색감, 빛과 풍경이 피사체와 어우러지는 느낌, 크고 작은 소품의 모양과 그 배치가 아름다운 것이 좋다. 솔직히, 영화의 내용이 조금 미약하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예쁘면 사랑한다. 그래서 필자는 미장센을 아름답게 만드는 감독인 ‘우디 앨런’과 ‘홍상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디 앨런은 작은 수수함도 낭만적이고 화려하게 만들고, 홍상수는 모든 화려함을 수수하고 솔직하게 만든다. 그들의 영화에 푹 빠져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을 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 천재’라 인정하는 이들은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본인의 수양 딸을 성추행한 의혹이 있고, 여자친구의 수양 딸과 결혼했던 우디 앨런,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배우와 당당히 외도를 한 홍상수. 영화계에서 이들을 어찌 여길 지는 항상 설왕설래로 남아 있다. 이는 ‘예술’을 외재적인 요소와 분리해서 봐야 하는 것인지 즉, 사회의 잣대를 예술에 적용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의 문제로 직결된다.

문제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필자는 예술이 외부와 차단돼야 한단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했었다. 예술은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생각하기 나름이고, 수용자 자신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창작자의 사상은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 수강했던 영화 관련 교양 과목에서 필자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예술이 밖으로 내뱉는 말을 무시하면 안 된단 것이다. 예술이 세상으로 저마다의 ‘말’을 걸면, 현명한 수용자는 이를 ‘듣고’ 반응해야 한다. 한편, 필자가 자신있게 ‘창작자를 분리해냈다’고 다짐한 영화 속엔 창작자의 언어가 짙게 투영돼 있었다.  해변에서 주인공 남여가 나란히 걷는 장면이 아름다워 필자의 인생 영화라 다짐했던 우디 앨런의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는 이중의 이중인 불륜과 외도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과 주변 배경의 수수함을 투박하게 담은 것이 낭만적이라 좋아했던 홍상수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불륜의 핑계를 구구절절 길게도 담고 있었다.

필자는 영화를 사랑하기에 더는 이러한 부적절한 것들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말해, 영화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가 부정적이라면, 귀를 막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다’고 반응할 것이다. 필자가 미학적으로 느낀 행복함이 더러운 메시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창작자가 오해한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수용자인 나에게 존재한다. 영화 밖 이야기들을 영화 안으로 가져와 역겨움을 느끼고, 이를 표현해야 진정한 관객의 자격을 가질 수 있으리라.

가끔은 물의를 일으킨 예술가와 그의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미장센을 노려보기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전히 필자는 우디 엘런의 영화와 홍상수의 영화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생각하면 파리의 르네상스가 금빛으로 물든 장면이 떠올라 두근거린다.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생각하면 춥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젠 왠지 ‘역겹다’는 생각이 들고, 온전한 예술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 아름다움들은 찝찝하게 눈에만 남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창작자들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의 아름다운 것들을 당당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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