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천이 가지는 의미
한 장의 천이 가지는 의미
  • 이예빈 기자
  • 승인 2023.01.02
  • 호수 1559
  • 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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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가 시작됐다. 새로운 해를 기념하기 위해 거리와 건물 곳곳을 장식한 불빛은 잠시나마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듯하다. 하지만 새해가 모두에게 똑같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2023년 대한민국에선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민주화’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히잡 착용 거부 시위를 이어가는 이들이다.

 

▲ 이란 히잡 시위 참가자들이 국립 갤러리 앞에서 시위 중이다.
                                   ▲ 이란 히잡 시위 참가자들이 국립 갤러리 앞에서 시위 중이다.


지금 이란은 투쟁 중
지난해 9월 시작된 ‘2022 이란 히잡 시위’는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단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한 이란 여성의 의문사로 촉발됐다. 그의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를 위해 장례식장과 테헤란대학교 등에 수백 명의 시민이 “여성, 생명, 자유”가 적힌 팻말을 들고 모인 것이다. 윤성원<사회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란에선 지난 2003년 학생시위와 2009년 녹색운동 등 일련의 자기결정권 보호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며 “이번 시위 또한 구체적으론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자유에 대한 열망이라는 본질 자체는 앞선 시위들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약 3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이 시위는 기본적으로 팻말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는 등 비폭력 시위였으나, 이란 당국은 수많은 시민을 체포 및 구금, 심지어 사형까지 하는 등 강력한 무력 진압으로 이에 대응했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지금껏 5백여 명의 시위 참가자가 사망하고, 1천8백여 명이 구금됐다. 최근엔 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나 축구 선수 보리아 가포리도 등 세계적 유명 인사마저 체포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대를 보내는 국제사회
이번 히잡 시위는 이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촉구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도한 탄압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단 점이다. 윤 교수는 이를 두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분출된단 점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시위의 의의에 공감한 사람들이 국제사회 곳곳에서 관심과 연대를 보내고 있다.

최근 2022 월드컵에선 이란 축구팀이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관중들이 히잡 의문사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외치는 방법으로 국제무대에서 연대를 표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독일과 미국 등 국가에선 대규모 연대 시위를 벌이며 이란 시민들과 함께 “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다. 미국과 유럽국가의 경우 이란 정부 고위 관계자의 재산을 동결하고 여행을 금지하는 등 제재조치에 대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시위를 폭력적으로 탄압한 책임이 이란 사회지도층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또한 지난달 14일 이란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분위기 또한 서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보여주는 행사론 지난 20일 국회인권포럼과 아시아인권의원연맹이 개최한 ‘2022 올해의 인권 시상식’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시상식에선 ‘히잡 착용 반대 시위 이란 여성’이 수상자로 선정돼, 국내에서 히잡 착용 반대 시위를 이끄는 이란 여성 일곱 명이 시상식에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용기 낸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시위는 그저 ‘이란 정부가 몇 명을 처형했다’던가 ‘히잡 착용은 무조건적으로 반대해야 한다’는 등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살펴볼 수 있다. 우선 히잡을 비롯한 무슬림 여성의 복식에 대해선 무슬림 사회와 시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퍼져온, 히잡을 여성 억압의 도구로 보는 관점을 이슬람 문화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잘못 이해해선 안 된단 지적이 있다. 강경란<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유럽국가들이 히잡 반대 세력에 지지를 보낼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란 내에 상당수 존재하는 히잡을 지지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해선 안 될 것”이라 강조했다. 무슬림으로 자란 잠시드 사마도브<국제학부 21> 씨도 이번 시위를 두고 “일부 대중이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공개적으로 히잡을 불태운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리 시위를 지지하는 뜻이었다 하더라도 한 문화를 함부로 훼손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 국가’란 이유로 엄격한 규율만을 따르고 사회개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보수적일 거란 편견을 가지곤 하는데, 이란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강 교수는 “엄격한 이슬람 국가로만 보이는 이란은 사실 굉장한 다양성을 가진 국가”라며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번 시위엔 △종교적 통제에 대한 반발심 △오랜 경제제재로 인한 피곤함 △급변하는 국제 정세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가능한 사회 분위기 등 복잡·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번 시위와 이란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달리 할 수도 있다.

그저 ‘남의 이야기’로 보지 않길
일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건을 깊이 있게 알아보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강 교수는 “국제사회의 역할은 아직까지 히잡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 말한다. 이란 시민으로서 멀리서나마 시위를 응원한단 자흐러 이자리<서울시 강남구 26>씨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우린 표현의 자유를 잃었고 인터넷마저 막혔다”며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혁명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란에서 하루빨리 부당한 폭력이 멈추고 어떤 형태로든 인간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가 인정받길 바란다. 시위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위해선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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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8:35:42
해당 시위를 통해 이란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권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며,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히잡 착용 반대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더 강화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