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밤바다 기차
[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밤바다 기차
  • 유윤임<공대 도시공학과 17> 씨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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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가 있어.’상현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 민희는 웃었다. 아직, 바다를 지나는 혹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기차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배를 두고, 기차를 바다 위에 띄우는 것은 퍽 무용하다. 따라서 ‘밤바다 기차’는 굉장히 판타지 영화의 소재 같다. 그래서 민희는 웃었지만, 자신의 감상을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상현도 민희의 반응을 예상한 듯 담담하게 웃었다. 그의 담담한 태도는 꼭, 그가 세상이 잊어버린 진실을 말하는 거로 보이게 했다. 그는 꼭 어리석은 어른들을 바라보는 어린이처럼 굴었다.

 “그 기차는 밤에 바다 위에서만 나타나는 거야?”

 민희는 그의 진지한 태도에 밤바다 기차에 관해 물어보았다. 이는 천사를 봤다고 외치는 어린이에게 어른들이 보이는 반응과 비슷했다.

 “그 기차는 밤에 바닷가에서, 인적이 없을 때만 볼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기차표를 가진 사람 눈에만 보인대.”

 상현은 퍽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그 기차표는 어떻게 구할 수 있는데?”

 민희는 나름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 기차표는 자기가 사거나 할 순 없고, 남한테서 받아야 해.”

 “점점 판타지 소설 같아. 그럼, 자기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기차를 아는 타인으로부터 받아야만 하는 거야? 최초로 기차표를 산 사람은 있을 것 같은데, 바로 발행인부터 시작하는 건가? 기차표는 여하튼 차표니까, 돈을 안 받으면 무얼 대가로 받는 거지?”

 “그러게. 차표를 만든 사람은 누구고, 그리고 가장 먼저 차표를 받은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 무엇과 차표를 교환하는 걸까?”

 상현은 고민했다. 민희는 자기가 말하고는, 고민하는 상현이 나름대로 귀여웠다.  

 “오빠도 잘 모르는구나. 하기야 밤에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기차가 우리 시대의 화폐나 돈으로 운행될 것 같지도 않아. 기차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인데, 돈으로 차표를 살 수 있다면, 뭔가 논리에 맞지 않아. 꿈은 꿈의 논리를 가지고, 현실은 현실의 논리를 가질 테니까.”

 “그렇겠네. 꿈은 꿈의 법을, 현실은 현실의 법을 가지겠네. 그 둘이 섞여서 이상하게 논리를 세우지는 않을 거야. 민희는 역시 똑똑해.”

 상현은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는 듯했다. 그리고 탁자 위의 쇼콜라 쇼를 마셨다. 상현의 쇼콜라 쇼 앞에는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상현은 달달한 음료를 좋아했고, 민희는 그럭저럭 가리는 음료는 없었으나 커피를 즐겨 마셨다.  

 “이 카페 추워서 들어왔는데, 커피도 나름 맛있어. 쇼콜라 쇼는 어때? 초코라떼나 핫초코랑 많이 달라?”

 “음...  더 진해. 초콜릿을 그대로 녹였나봐. 그리고 뭐가 더 들어간 것 같은데. 마시멜로우인가? 맛있어.”

 둘은 오랜만에 데이트를 나왔다. 상현은 졸업 논문과 취업 준비로, 민희는 기말 프로젝트와 시험으로 바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간 곳은 경복궁이었다. 궁의 기와와 정원의 나무들 위로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눈을 맞으며 걸었다. 궁을 한 바퀴 걷고, 서점에 들렀다가, 다시 걸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하듯 떠돌았다. 그렇게 그들은 경복궁 근처의 주택가로 흘러들었다. 그들은 한참 눈을 맞아서인지 추웠고, 곧 조용히 앉아있는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의 유리창은 매우 맑았다. 카페는 인도 쪽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원 쪽으로도 유리창이 나 있었다. 정원은 작지만 잘 가꿔져  있었고, 겨울이라도 고즈넉한 느낌을 줬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카페 안은 고풍스러웠고 또 소란하지도 않았다. 둘은 정원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정원과 그 너머로 다른 집의 기와가 보였다. 그렇게 둘은 따뜻한 음료를 마셨다. 서울답지 않게 고즈넉했고, 여유롭고 조용한 한때였다. 그래서 민희는 그 순간이 환상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상현도 밤바다 기차를 말했는지 모른다.

 “바닷가에서 기차를 탄다고 했잖아. 기차표에 시간은 나와 있는 거야? 제주도 협재 해수욕장은 23시 15분, 부산 해운대는 24시 이렇게? 운행 노선도 있어?” 

 민희는 다시 밤바다 기차 이야기를 꺼냈다. 동화를 듣는 마음으로, 또 이 기차 이야기가 그 순간을 동화처럼 만들어주었기에.

 “기차 노선이라. 서해안부터 제주도, 남해안, 동해안 이렇게 돈다고 했어. 기차는 해가 지고 얼마 안 있으면, 강화도의 바다를 지나간대.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밑의 바다로 내려갔다가. 확실한 시간은 잘 모르겠어. 밤의 중간쯤이면 남해의 중간쯤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기차를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정거장은, 아무래도 그래, 여기 동막해변일 것 같다.”

 상현은 네이버 지도를 켜서, 38선 아래와 가장 가까운 서해안부터 제주도, 남해, 동해를 훑어서 기차의 노선을 그렸다. 그리고 강화도의 바다를 살펴보다가 육로로 연결된 곳 중 서울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동막해변을 가리켰다.

 “오빠도 뭔가 잘 모르는 것 같아. 시간은 안 정확한 거야? 그럼 어떻게 타?”

 민희는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기차표에 시간과 장소는 나와 있지 않아. 일단 기차표를 가지고 바다로 가야 해. 그러면 기차표의 여백에 자신이 있는 바다가 정거장으로 나오고, 그다음 시간이 나온대.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그 바다에서 기다리면, 기차가 온대. 나도 잘 모르겠어, 타본 적도 없고. 나도 들은 이야기야.”

 상현이 대답했다.

 “해가 지자마자 바다에서 기다려야겠네, 내가 바다에 갔는데, ‘이미 기차가 지나갔습니다.’라고 표에 나타날 수도 있는 거잖아. 뭔가 굉장히 불안한 교통수단인걸. 그나저나, 들은 것 치곤 상세하게 알고 있고. 누가 말해준 거야?”

 미리 알 수도 없고, 이미 지나갔을지도 모르고, 놓치면 다시 탈 수 없는 교통수단이라니.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유니콘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고 민희는 생각했다. 이런 유니콘을 누가 상현에게 말해준 걸까? 그리고 상현이 이토록 이 이야기에 진지한 까닭은 무엇일까? 상현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설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그는 딱히 판타지 영화나 소설에 호응하는 축도 아니었다. 그는 현실에 천착해 사는 편이고, 그의 전공 또한 현실을 떠나지 않았다.

 “친구가 말해줬어, 옛날에. 그 친구와 고등학교 때 이후로 만난 적이 없어. 처음 들었을 때는 너처럼 웃었는데 말이야, 이게 정말일 것 같아. 그리고 정말이면 좋겠어.”

 상현은 그렇게 말하고, 창가를 봤다. 그렇게 아직 눈이 내리는 밖을 응시했다. 민희는 그런 상현을 바라보다, 그에게 쇼콜라 쇼를 마셔도 되겠냐고 물었다. 상현은 ‘당연히’라고 말하며, 쇼콜라 쇼를 민희 앞으로 갖다주었다. 민희는 쇼콜라 쇼를 한 모금 마셨다. 초콜릿의 단맛과 아까까지의 아메리카노의 맛이 섞였다. 쌉싸름한 혀 위로 단맛이 얽혀들었다. 민희는 상현이 한 모금의 쇼콜라 쇼 갔다고 생각했다. 쌉사름한 일상 사이로 한 모금씩 얽혀드는 단맛. 민희의 세계를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가끔 단맛을 접하게 하는 존재. 민희는 한 모금 마신 쇼콜라 쇼를 다시 상현의 앞에 놓았다. 상현 또한 민희의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맛있다고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아’라고 민희가 말했고,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희는 고즈넉한 카페의 분위기로 다시 녹아들었다. 상현은 그런 민희를 본 뒤 다시 창밖을 보았다. 민희는 밤바다 기차를 이야기해 준 친구에 관해 물어볼까 했다. 그러나 상현은 딱히 그 친구에 관해 이야기 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민희와 시선이 마주치면 그저 웃을 뿐이었다. 민희는 그가 말하지 않는 주제를 굳이 물어보는 편이 아니었기에, 묻지 않았다. 테이블 위로 올라와 있는 상현의 손을 잡고, 민희도 그처럼 침잠했다. 

 상현이 26살을 맞는 이 시점에, 고등학교 이후로 만난 적 없던 친구의 이야기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정말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근래에 정말이기를 바라는 이유는? 성현은 밤바다 기차보다는 해저터널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게 어울릴 법한 사람이다. 기적을 바라기보다는 눈앞의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하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민희는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상현과 지금 눈앞의 상현을 비교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걱정거리라도?”

 민희가 혹시 해서 물었다.

 “일은 없어, 걱정거리도 없고. 취직도 잘 됐고, 졸업해서 심숭생숭한가봐.”

 상현이 그렇게 답했다. 민희는 더 물어볼까 싶었지만, 상현의 끝맺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럼 다행이야. 많이 심숭생숭한가봐. 힘든 일 있으면 말해줘. 나 계속 있으니까.”

 “고마워.”

 “오늘 많이 지쳐 보이는데, 일찍 들어갈까?”

 “그래도 오랜만에 나왔는데, 저녁은 먹고 들어가자.”

  그렇게 말하는 상현은 지쳐 보였다. 민희는 지쳐있는 상현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 그가 쉬기를 바랐다. 밥은 다음에 같이 먹어도 될 일이다.

 “아니야. 내가 피곤해서 그래, 우리 들어가자.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인지 그렇게 배가 고프지는 않아. 아니면 오빠가 배고파?”

 “나도 배가 고프지는 않아. 너가 괜찮으면 들어가자.”

 “그러면 우리 돌아가자.”

  민희와 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둘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고, 지하철을 탔다. 민희는 지하철의 비어있는 한 자리에 상현을 앉혔다. 상현은 괜찮다며, 민희보고 앉으라고 말했지만, 민희는 서서 가겠다고 웃었다. 이전에도 그가 피곤해 보이면 민희는 기어코 서서 갔기 때문에, 상현은 고맙다고 말하고 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은 지하철을 갈아타고, 그들의 대학교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민희는 대학의 기숙사에서 살았고, 상현은 근방의 원룸에서 자취했다. 상현의 자취방까지 가는 길에 민희의 기숙사가 있었기에, 그들은 기숙사 앞에서 헤어졌다. 

 

 민희는 방으로 들어갔다. 민희의 룸메이트는 옷을 갈아입던 참이었다.

 “일찍 들어왔네?”

 “응. 너는 지금 나가?”

 “친구 집에 가. 오늘 아마 안 들어오고, 내일 올 것 같아.”

 “잘 다녀와.”

 그렇게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룸메이트는 방 밖으로 나갔다. 민희는 책상 스탠드를 켜고 앉았다. 저녁을 먹지 말고, 그냥 잘까 고민했다. 그러나 민희는 헤어지기 전에 상현에게 식사를 꼭 하라고 당부한 참이었다. 민희가 그냥 저녁을 넘기면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기숙사 식당의 저녁 시간은 막 끝난 참이었고, 다시 밖으로 나가 밥을 먹기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민희는 기숙사 내의 편의점에서 대충 식사를 때우기로 했다. 그렇게 컵라면을 사서 먹는데, 민희는 문득 상현도 자신처럼 식사를 대충 때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민희이 예감이 맞을 것이다. 민희나 상현이나 굳이 밥을 충실히 먹는 편도 아니었다. 충실하게 밥을 먹지도 않았고, 연락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편도 아니었다. 둘은 그런 공통점 때문에 서로에게 친숙해졌다. 그래도 둘은 밥을 핑계로 종종 만났기에, 같이 있으면 밥을 대충 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학식이라든지, 한식이라든지, 그럭저럭 밥과 반찬, 국을 모두 먹었다.

 민희는 상현에게 메시지라도 보낼까 하다가, 그 메시지가 그를 번거롭게 할까 봐 말기로 했다. 상현은 대충 끼니를 때우고,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실 것이다. 그는 맥주를 한 캔쯤 마신 뒤에 잠이 들것이다. 그는 심란한 날이면 그러곤 했다. 오늘 마지막에는 그가 심란해 보였으니, 아마도 그러리라. 민희는 이왕이면 맥주가 그에게 꿈 없는 잠을 선물하기를 바랐다. 

 

 민희는 계절 학기를 수강했고, 또 자격증을 준비했다. 상현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라 바빴다. 둘은 서로에게 너무 고생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놀고 쉬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둘은 각자의 일에 열심히 바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가끔 회사 급식 메뉴가 맛있다든지, 새로운 사탕을 발견했다든지, 혹은 지하철 역사 앞에 문어빵 차량이 왔다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둘은 연락했다. 2~3일에 한 번씩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상대를 떠올렸고 그렇게 즐거움을 전했다. 그랬다. 그렇게 민희의 겨울방학은 지나갔고, 3월이 왔다. 민희에게는 대학에 와서 두 번째로 맞는 3월이었다. 민희는 개강한 첫 주에, 방한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대학 동기들을 마주쳤고, 인사했다. 신청한 강의에 따라서 대학 내 서점과 중고 책방에서 전공 서적 등을 샀다. 민희는 시간이 남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학식을 혼자서 먹었다. 햇빛이 좋은 날엔 까페 밖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햇볕을 쬐는 중에, 지나가던 대학 동기들을 스쳤고, 때때로 그들과 인사했다. 민희는 조금 아쉬웠다. 작년까지는 바빠도 상현과 같이 밥을 먹을 짬이 있었고, 오다가다 자주 마주치기라도 했다. 그러나 상현이 대학을 졸업하자 그런 일이 없었다. 더 이상 민희와 상현은 같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민희는 강의를 다 듣고 기숙사 앞의 운동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찰라, 상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오늘 저녁에 시간이 괜찮은지 상현이 물었다. 민희가 그렇다고 답했다. 민희는 기숙사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기숙사에는 학기가 바뀌면서 바뀐 룸메이트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는 민희를 보고, 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민희가 그렇다고 말했다. 룸메이트는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민희는 고맙다고 말하고 문을 나섰다. 룸메이트는 바뀌었지만, 민희가 룸메이트와 하는 대화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민희는 오랜만에 만난 상현과 번화가의 이탈리아 식당에 갔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은 뒤, 근처의 카페에 갔다. 이전의 카페와 달리 시끌벅적 했다. 그리고 둘은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기숙사 앞에서 인사할 참이었다. 상현은 민희에게 상자를 건넸다.

 “선물이야?”

 “선물이야. 들어가서 열어봐. 알겠지?”

 “고마워.”

 “생각나서... 그리고 당분간 연락 못 할 것 같아. 미안해. 많이 바빠서.”

 “아냐, 그럴 수 있지. 그럼 연락할 때까지 기다릴게.” 

 “고마워, 기다려줘서. 신학기 잘 보내고, 이번에는 좀 많이 놀러 다니고. 알겠지?” 

 “오빠도. 너무 고생하지는 말고. 물론 회사 다니니까 맘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둘은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민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갔다. 회사에 취직하면 정말 많이 바쁜 걸까? 민희는 이제야 2학년이고, 주변에 갓 취직한 지인도 없었다. 따라서 연락도 못 할 만큼 바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의심이 아니라, 순전히 궁금했다. 그렇게 바쁠 수 있는지, 그럼 이 세상 신입사원과 회사원들은 쳇바퀴 돌듯이 바쁘다가 퇴근 후에 기진맥진하는 것인지를. 민희도 이내 자신도 기말 시험 기간이나 고등학생 때 정말 시간이 없었음을 기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애 대부분 시간이 없는 숙명을 지녔나 보다. 민희는 뭔가 허탈했다. 상현을 통해 본 미래가 조금 허탈했을 뿐이다. 

 

 방으로 돌아와서, 민희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파란색 돌이 들어간 은침 귀걸이가 있었다. 민희는 파란색과 잘 어울렸고, 그래서 파란색을 좋아했다. 귀걸이를 꺼내자, 그 아래 깔려 있던 파란 종이를 발견했다. 파란 종이는 빳빳했다. 마치 기차표처럼, 아니 이 파란종이는 기차표였다.

 밤바다 기차

 1인석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타시오.

 시간:           / 정거장:      

 상현이 말한 밤바다 기차였다. 그의 말처럼 시간과 정거장은 공란이었다. 글씨는 하얀색 잉크로 적혀있었다. 밤바다 기차표는 꼭 판타지 영화의 굿즈처럼 생겼다. 판타지 영화에 진지한 팬들이 모을 법하게 생긴 모양새였다. 기차표는 꼭 진짜처럼, 그리고 어딘가 마법이 담겨있을 것처럼 생겼었다. 이 기차표는 상현이 만든 것일까? 아니면 산 것일까? 민희는 구글과 네이버에 밤바다 기차를 쳤다. 그러나 기차 가든, 밤바다 기차 까페와 같은 식당 광고만 뜰 뿐 상현이 말한 기차는 아니었다. 혹시 몰라 인터넷 서점에도 밤바다 기차를 검색했다. 그러나 그런 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현이 말한 밤바다 기차와 관련된 동화, 소설, 영화 심지어 전설도 존재하지 않았다. 밤바다 기차는 상현의 친구가 창작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창작물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언급되지 않을 만큼, 개인의 이야기였다. 그럼 이 기차표는 그 친구가 만든 것일까? 아니면 상현이 만든 것일까? 상현은 이걸 왜 민희에게 준 것일까? 그리고 상현은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는 걸까, 정말로? 상현은 무언가 허상에 몰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드라마를 몰아보지도 진지하게 보지도 않았고, 하물며 게임마저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딘가에 매몰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수학 문제 풀 듯 단계별로 제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상현이 이 기차표를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그가 설령 밤바다 기차가 실존하기를 원하더라도, 이렇게 만든 기차표 하나로 그 바람을 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차표는 아무래도 그의 친구가 준 것일 테다. 그는 남에게서 받은 것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여태껏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지녀왔던 것을, 왜 지금 민희에게 준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 기차표만큼 오랜 시간 곱씹거나 혹은 묻어두었을, 밤바다 기차를 최근에서야 민희에게 말했단 말인가? 상현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불현듯 민희는 상현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었을 때, 기숙사 앞에서 나눈 인사가 걸렸다. 상현은 당분간 연락하지 못한다고 했고, 민희는 그러마 했다. 상현과 민희는 서로에게 부탁한 일을 꼭 지켜왔다. 부탁을 수긍했다면, 더더군다나. 오늘은 만나기 힘든 날이니 다음에 만나지 않겠냐라든지, 특정 시간에 연락하는 것은 힘드니 피해달라든지, 어떤 대화 주제는 본인에게 거북하니 피해 주지 않겠는지 그런 것이었다. 둘이 부탁하는 주제는 비슷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침범할 때쯤 부탁했다. 둘은 접하면서도, 서로의 세계에 침입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큼,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도 조심했다. 둘은 접하려고 했다, 서로를 관통하지 않기 위해서.

  

 민희가 상현을 만난 것은 공과대학 공통수업인 ‘공학입문설계’에서다. 민희야 갓 스무 살, 1학년이니 당연히 수업을 들었다. 상현은 그 과목을 1학년 때 듣지 않았는데, 4학년 졸업반이 되어서야 수강할 수 있었다. 민희는 강의실 앞자리에 앉았고, 상현도 매한가지였다. 상현은 딱히 앞자리에 앉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화기애애한 타 학과의 1학년들이 중간부터 맨 뒷자리를 차지했었다. 민희 또한 그들과 같은 과 1학년이었지만, 그 애매모호하게 친한 ‘동기’들 사이로 얽혀들고 싶지 않았다. 어설프게 들뜨고, 친하고, 시끌벅적한 무리. 대학교 동기들에게 사감은 없었으나, 사람들과 어떻게든 얽혀들지 못해 못 배기는 그 분위기를 민희는 견딜 수 없었다. 민희는 어색한 안부 인사 술자리, 과하게 우애 있으면서도 돌아서면 허탈한 관계를 견딜 수 없었다. 애초에 혼자 다니지 못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민희는 사람들에 얽혀서 술자리에 따라가고, 굳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고, 과제를 나눠서 하고, 교양 수업을 동기들 따라 듣고 싶지 않았다. 민희는 주관이 뚜렷했으나 그만큼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지 못했다. 민희와 상현이 앉은 테이블에 또, 그들과 다른 학과의 2, 3학년이 앉았다. 그렇게 앉아 있는 대로 조가 정해졌다, 공학입문설계는 매주 적당한 실습과제가 있었고, 중간고사 이후로는 최종 기말 프로젝트가 있었다. 실습과제들을 통해 배운 것을 활용해,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아두이노와 브레드보드, 레이저 컷팅기와 도면 프로그램, 톱니의 역할 등을 활용해서 스마트홈 모형을 만들어야 했다. 기계공학과에 비하면 난이도가 낮은 프로젝트였다. 민희와 상현을 제외한 2명의 팀원은 바빴다. 수업 시간에도 딱히 역량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역할에 만족했다. 민희나 상현도 애초에 타인에게 뭔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둘은 함께 과제를 했다. 기말 프로젝트 발표가 다가오면서, 강의 시간을 마치고 남아야 하는 날이 늘었다. 둘은 그렇게 점심에도 만났고, 저녁 먹기 전까지 과제를 하는 날도 있었다. 공학관 가까이 있는 신소재관에서는 학식을 먹을 수 있었다. 굳이 따로 먹을 필요는 없었기에, 둘은 식당에 같이 갔고, 함께 앉아서 밥을 먹었다. 상현과 민희는 별달리 상대에게 무언가를 묻거나 하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과제 이야기와 학식 메뉴에 관해 이야기하다, 조금씩 서로의 흥밋거리를 털어놓았다. 민희는 동기들 사이로 들어갈 수 없었고, 상현은 복학한 4학년이기에 이래저래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홀로 학식을 먹다가, 혹은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따위를 사다가 마주쳤다. 그렇게 마주치면 그들은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물론 그들이 마주칠 때, 한 명은 이미 식사 중반이거나 끝일 무렵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먼저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민희는 그게 참 좋았다. 민희는 거의 학식을 혼자 먹었는데, 종종 식사하러 온 동기들을 마주쳤다. 그러면 꼭 동기들은 민희에게 와서 인사를 하거나 혼자 먹냐고 물어봤다. 민희에게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가끔은 어쩐 일인지 혼자 밥을 먹으러 온 동기들이 있었다. 그들은 먼저 먹고 있는 민희에게 넉살 좋게 말을 붙이면서 민희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먼저 먹으면 자리를 떠나거나, 혹은 다른 동기무리가 왔을 때 그 무리의 자리로 떠났다. 민희는 그런 동기들이 싫다거나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차라리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기를 그때만큼은 바랐다. 상현은 처음에는 정중하게 앞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고, 먼저 떠나는 일이 없었다. 민희도 상현을 먼저 떠나지 않았고, 상현에게 정중히 물어봤다. 그들은 가끔 학교의 카페나 운동장에서 음료를 마시는 서로를 발견했다. 그때쯤이었다, 민희가 상현이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안 것이. 민희가 기말 최종 프로젝트를 발표를 마친 날이었다. 둘은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순간이었다. 민희는 상현에게 왕십리에서 가장 맛집이 어디냐고 물었고, 상현은 민희와 함께 선짓국밥 집에 갔다. 대학가에서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20분 가량을 걸어서 둘은 선짓국밥 집에 갔다. 민희는 길이 멀다고 느끼지 않았고, 상현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상현은 다른 사람들은 멀다고 함께 선짓국밥 집에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짓국밥 집은 새벽의 버스터미널만큼 조용하고, 사람이 있었다. 민희와 상현은 선짓국밥을 좋아했다. 민희와 상현은 그렇게 서로를 발견했고, 마주쳤다.

 

 딱히 궁금하지 않은 동기들의 이야기도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들을 수 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미리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똑같이 먼저 온 동기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했다. 민희는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리고 강의실에 있다 보면, 좋든 싫든 같은 과의 사람들과 인사하게 되었다. 아직 2학년이라서 그들의 수업 시간표는 거의 동일했고, 그만큼 그들과 마주쳤다. 과의 특성상 조별 과제가 많아서, 의무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렇게 2주가량 시간이 흘렀을 때쯤 이었다. 민희는 대학 동기들과는 같은 캠퍼스, 강의 시간을 공유했다. 그러나 상현과는 그러지 못했다. 막 개강했을 때는 그 사실이 아쉬웠었을 따름이었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위협적이었다. 상현과 연락하지 않으니, 상현은 민희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다만 민희가 상현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민희는 누구로부터도 상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상현과 우연이라도 마주칠 일마저 없었다. 상현의 세계는 민희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 듯했다. 상현의 졸업 이후로, 민희와 상현을 이어주는 것은 민희와 상현 둘 뿐이었다. 그 이전에는 같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었다. 민희는 새삼 상현과 자신의 관계가 굉장히 연약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둘은 함께 공유하는 인간관계도 없었다. 그저 둘뿐이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세계를 침입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에, 서로로 인해 변형된 부분도 작았다. 민희는 이전과 같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밥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 식사 시간은 민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그래서 민희는 무서웠다. 

 

 민희는 상현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무서워서. ‘해당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로...’ 그럴 리가. 민희는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상현의 번호가 맞았다. 다시 걸었으나, 이전과 같은 응답이 돌아왔다. 민희는 카카오톡으로 상현에게 연락을 달라고 톡을 보냈다. 상현은 카카오톡 외의 SNS를 하지 않았다. 민희는 상현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민희는 낮에 톡을 보냈고, 이후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로부터 어떤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민희는 무작정 상현의 자취방으로 갔다. 상현의 자취방 창문은 어떤 빛도 새지 않았다. 민희는 벨을 눌렀다가,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시끄러웠던 것인지, 상현의 이웃이 나왔다. 상현 또래의 학생이었다. 

 “저기요!” 그렇게 외치는 이웃은 무척 언짢아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게 남자친구가 여기 사는데, 며칠째 연락이 안 돼서요.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민희는 허겁지겁 달려온 데다, 무척 겁먹어 있었다. 그게 이웃의 눈에도 보였는지, 이웃의 목소리와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아, 오늘 아침에 나가시는 소리는 났는데 돌아오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계속 조용했고요. 오늘 제가 공강이라서 집에 계속 있었거든요. 아마 여기 계시지는 않을 거예요. 오늘 아침까지 나가는 소리는 들렸으니까, 귀가가 늦으시는 것 아닐까요? 별일 없을 거예요.” 이웃은 퍽 상세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민희는 인사를 하고 그 원룸 건물을 나왔다. 원룸 건물 맞은편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민희는 데이트 당시 심란해 하던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준비한 듯이 ‘없는 번호’라고 말한 응답이 꺼림칙했다. 민희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오늘 꼭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민희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그가 귀가하기를 기다렸다. 민희는 얼어붙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찰 때쯤이면, 과자나 음료수 같은 것을 다시 계산하고 쇼윈도 앞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러나 해가 뜰 때까지, 그리고 출근 시간이 될 때까지 상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민희는 먹지 않은 과자를 품에 안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민희는 그냥 상현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지 않고 이별 당한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봐온 상현은 그렇게 관계를 정리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만남까지도 그와 민희 사이에 별 이상한 기류는 없었다. 다만 상현이 밤바다 기차를 이야기하며 심란해했을 뿐이었다. 민희는 혹시 몰라 상현의 회사로 전화하기로 했다. 만약 회사에 상현이 있으면, 단순히 상현이 헤어지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민희는 상현이 근무하는 회사와 부서의 전화번호를 인터넷상에서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임상현 사원 있나요?”

 민희는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자신에게 임상현 사원과의 관계를 물을까 봐 겁이 났다. 

 “아, 임상현 사원은 오늘 휴가를 내서 자리에 없습니다. 그보다도 임상현 사원과의 관계가 어떻게...”

 민희는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상현은 회사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방에도 없었다. 물론 그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희는 상현은 영영 민희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을 것 같았다. 경찰서에 연락해야 할까? 그러나 어제까지 상현은 민희의 세계 밖에서 잘 살아 있었다. 경찰서에 가야 할 일인지, 그리고 가본들 그녀의 말을 들어줄지나 의문이었다. 민희는 상현을 잃어버렸다. 민희는 책상에 앉아서 멍하니 그 사실을 곱씹다가, 책상에 놓여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상현이 준 상자였다. 민희는 상자를 열어 귀걸이와 기차표를 확인했다. 그래, 밤바다 기차. 상현은 민희의 세계에 단서를 흘려두었다. 딱 하나의 단서. 민희는 상현이 한 이야기를 복기한다. 가장 먼저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상현이 언급한 바다인 동막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에 따르면, 민희의 대학으로부터 동막해변까지 약 4시간 20분이 걸렸다. 지금은 10시이고, 도착하면 2시쯤이 되리라. 일몰까지는 넉넉한 시간이다. 민희는 새벽 동안 얼어붙었기 때문에,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쌌다. 그리고 상현이 준 귀걸이를 달았다. 가방에는 새벽에 산 과자들을 넣었다. 민희는 시리얼 바를 먹으면서 길을 나섰다. 지하철 역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상왕십리, 동대문 역사공원, 아현을 지나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언제와도 참 허망하고, 번잡한 곳이었다. 민희는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빨간색 광역버스를 탔다. 버스의 창은 한참을 갑갑한 서울 시내를 비췄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 분주한 사람들. 그러다가 버스는 논과 밭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지났고, 창은 서울보다는 덜 번잡한 아파트들을 다시 비췄다. 그리고 다시 도로였다. 그런 패턴이 이어지다 바다가 나왔고, 이내 완연히 한적한 곳에 들어섰다. 곧 강화도 버스터미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당히 친숙하고 구식인 터미널이었다. 민희는 갈아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분식집에서 은박지로 포장된 김밥을 샀다. 민희는 휴대폰을 켜서 지도와 버스를 확인했다. 앞으로도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다. 혹시 몰라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민희의  카톡창에는 어떤 메시지도 와있지 않았다. 오늘 그녀는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수업에 결석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당연했다. 민희도 누구를 찾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상현 또한 연락이 없었다. 민희는 마지막으로 버스를 갈아타고 밖의 풍경을 봤다. 상현을 생각했다가, 이내 비어있는 메시지 함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에게 아주 익숙했고, 별다른 감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상현을 찾으러 밤바다 기차표라는 허무맹랑한 것에 의지하고 있는 지금, 빈 메시지 함은 퍽 다르게 다가왔다. 누군가 일상에서 사라졌음에도 찾을 방법이 없거나 혹은 찾는 사람이 없었다. 상현은 민희에게서 사라진 사람이었고, 민희는 나름대로 일상에서 사라진 누군가였다. 그래서 민희와 상현과의 관계만큼이나, 민희가 세상과 아주 허약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녀를 스쳤다. 민희는 그와의 관계처럼 세상과도 접점만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단지 세상이 자신을 스쳐 지나갈 뿐, 자신을 관통하거나 간섭하지 않도록. 그렇게 민희는 자유로웠다. 다만, 이렇게 꿈같은 이야기에 의지해서 4시간가량을 여행하는 지금. 민희는 제가 세상과 맺어온 관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할 계기를 얻고야 말았다.

 

민희는 동막해변에 도착했다. 3시였다. 아무래도 환승 등으로 인해 시간이 더 걸렸나 보다. 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으로 뻘이 보였다. 바다의 짠 내가 맡아졌고, 바람은 아직 날카로웠다. 그러나 드디어 목적지에 와서인지, 곧 단서가 풀릴 것이라고 무의식으로 생각하고 말았는지. 어젯밤부터 미뤄온 허기와 피곤이 밀려왔다. 민희는 모래사장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터미널에서 산 김밥을 먹었다. 목이 메었다. 가방에서 뭉쳐둔 음료수와 과자들을 꺼냈다. 음료수는 달고 차가웠으며, 시었다. 그리고 그녀는 초코칩 쿠키를 마저 으적였다. 너무 차가웠다. 그러나 음식들보다도, 그녀 스스로가 추웠다. 모래사장은 햇빛을 받아 따뜻해 보였다. 민희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모래를 손으로 만졌다. 모래는 민희보다 따뜻했다. 민희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잠시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발자국을 바라봤다. 뻘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다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피곤했고, 바닷가에 자리한 까페에 들어갔다. 그녀는 코코아를 시키고,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

 

 민희가 눈을 떴을 때, 뻘은 보이지 않았고 바다가 모래사장 앞까지 와 있었다. 하늘은 붉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희는 기차표를 봤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타시오’가 눈에 밟혔다.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있었다. 민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렸다. 민희는 바닷가를 따르는 차도로 달렸다. 차는 다행히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다. 차도의 가로등이 깜빡였다. 하늘은 점점 붉은색으로 차오르다, 남색으로 메꿔졌다. 민희는 달리다가,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멈췄다. 바다 쪽으로 발목까지 오는 도로 벽이 올라와 있었고, 그 아래로는 방파제가 있었다. 그 방파제에는 충분히 사람이 설 수 있을 법했다. 이내 까만 남색으로 하늘이 채워질 때쯤, 민희는 다시 기차표를 주머니에서 꺼내 봤다. 가로등 빛에 비춰본 파란 종이에는, 얼핏 새로운 흰 글씨가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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