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2022년 11월 2일(수), 날씨 : 맑음
[장산곶매] 2022년 11월 2일(수), 날씨 : 맑음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2.11.07
  • 호수 155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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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경 편집국장
                                                                                           ▲    이휘경<편집국장> 

아침 7시. 어제 마신 술에 덜 깬 채로 일어나 부랴부랴 샤워를 했다. 급하게 준비하고 8시에 교내 카페로 첫 출근을 했다. 아르바이트란 걸 처음 했을 때 일했던 카페였다. 정말 오랜만에 추억이 가득 담긴 곳으로 들어서니 일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사장님께 근황을 전하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방학 때 여행 갔던 얘기, 최근에 봤던 재밌는 영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친구들은 요즘 뭘 하는지 등. 퇴근하고 나서는 미래자동차공학관 소파에서 잠깐 낮잠을 잤다.

오후엔 전공 수업을 듣고 학교 역 앞에 있는 쌀국수집에 가서 첫 끼를 챙겨 먹었다. 저녁엔 서대문구에서 노무사님과 인터뷰가 예정돼 있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거리를 가득 채운 단풍들과 늦은 오후의 따뜻한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사진을 계속 찍어댔다. 이후 도착한 역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잘 마쳤다.

저녁엔 동생과 백화점에 갔다. 향수 사는 걸 도와달라길래 같이 시향을 해보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주변에 맛집으로 입소문 난 곳을 찾아가 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옆자리에 앉은 분과 주문이 바뀌어 어쩌다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그 분이 우리에게 남매끼리 사이좋게 밥 먹으러 온 게 참 보기 좋다며 덕담을 해주셨다.

학교로 돌아와서는 24시 카페에서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온라인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난 후엔 기사 퇴고를 하고, 연합취재 원고 피드백을 준비했다. 오늘을 돌이켜보니 정말 보람차다.


그래, 이런 하루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치열히 살아내는 하루, 일주일, 일 년으로 가득 찼을 156명의 삶들이 순식간에 푹 주저앉아 사라졌다. 압사당했다.

이번 주엔 전공 시험이 2개나 있었다. 주말 밤, 본가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는 필자는 퇴근 후 어김없이 시험공부를 했다. 너무 아쉬웠다. 가장 좋아하는 동네 중 하나인 이태원에서 2년 만에 핼러윈 행사로 북적댈 텐데 축제도 못 즐기고 시험공부나 하는 게 짜증 났었다. 그렇게 시험만 아니었다면 이태원을 반드시 찾았을 거란 점에서, 더더욱 죽은 이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10월 30일 새벽 100이 넘어가는 사망자 숫자를 보고 펑펑 울었고, 벌벌 떨었다. 오늘도 사실 끊임없이 길을 가다, 밥을 먹다 계속 뉴스를 찾아봤다.

점점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사건 발생 4일 전 파출소에서 추가 인력을 요청했는데도 경찰청은 고작 20명을 배치하며 우려를 묵살했다. 이태원을 관광특구로 지정해놓을 땐 언제고, 정부는 10만 명이란 인파에 국가 주도 축제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누구도 탓하지 못할 거 같아서, 그저 즐기러 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일임에 속절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울어댔던 당일 날의 새벽과 달리 지금은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29일로 되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자꾸 사람들이 죽는다. 이번이 두 번째다. 동 세대의 사람들이 집단 죽음을 맞이한 뉴스를 보는 게. 미디어가 너무나 발달한 탓에 마치 눈앞에서 목격하듯 생생히 그들의 죽음이 송출되는 걸 본다. 이번엔 뉴스를 보는 내내 고통스럽다. 압사.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서 죽었다. 지옥철에서 핸드폰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꾹 끼어 등교했던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더, 더 끼어서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생각할 때마다 숨을 쉬기가 어렵다. 떠올리기만 해도 그곳에 있는 것 같고, 두렵고 무섭고 섬뜩하다.

왜 이런 나라일까. 사람들의 뇌에 집단 죽음의 기억, 거대한 트라우마를 푹 푹 찔러 넣는 나라. 그러고선 나 몰라라 하고 책임을 피하는 나라. 그 와중에 세간에 떠도는 피해자들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과 조롱은 살갗이 찢기는 듯한 섬뜩함을 준다. 대한민국이 점점 병들어 가고 있다. 그게 너무 잘 느껴져서 마치 피투성이가 된 생명체들이 한반도 위에서 펄떡대며 간신히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면 위론 따뜻한 손길을 애처롭게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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