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십보, 백보
[칼럼] 오십보, 백보
  • 이명균<대한교육법학회> 이사
  • 승인 2022.11.07
  • 호수 1556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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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이른바 진보 정부에서 보수 정부로 교체됐다. 단지 정부 교체를 넘어 정권 변동의 의미를 지닌다. 국민들은 어느 쪽을 지지하든 우려와 함께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에겐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 간 정치권력의 변화가 그리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거의 5년 또는 10년 주기의 단순 교체로 여겨지기도 하고, 기대와 희망 보다는 자신의 처지나 소속 집단의 이익 차원에서 아전인수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수, 진보 등 정치사회학 용어는 이제 내 편 네 편 가르기의 진영이나 갈등 및 대립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글로벌 경제 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 지구적 악재와 국채 누적, 저출산·고령화, 일자리 부족 및 청년 실업난 등 국내 상황의 난제들을 감안하더라도, 새 정부의 국정 역량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위협이 계속되고 있고, 최우방 미국 정상과의 만남에서 불필요한 언사로 국격을 실추시키는가 하면, 수권 여당 내부 갈등은 물론 여·야, 노·사, 남·여 간 대립 조정에 대한 정치적 기예나 개혁적인 정책 프로그램도 찾아볼 수 없으며, 급기야 이태원 참사의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가적·국제적 사고를 겪기에 이르렀다.

또한, 경제와 사회 및 국가 성장의 원동력인 교육 부문에서도 교육부 장관의 장기간 공석으로 교육정책의 방향성 부재, 산적한 교육개혁 과제들의 추진 동력 상실이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섣부른 초등학교 입학 연령 인하 이슈로 교육공동체는 물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우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이 정부는 국정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있는 것인가? 국가 운영의 기본적인 역량이 있기나 한 것인가? 백년대계로 일컬어지는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나 적합한 인사 시스템이 있는 것인가? 나아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치인가?

물론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시작 1년은 국정 설계와 업무 파악에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대통령의 개인적 자질은 물론 대통령실의 참모 및 장·차관 등 행정관료, 그리고 정치적 기반과 역량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아무리 극우 성향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국제 정치 지형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국내 정치와 사회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중국 전국시대 왕도정치 사상가로 유명한 ‘맹자’는 양혜왕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오십보, 백보’라는 말을 제시하였다. 수재를 당한 백성들에 대한 구휼 정책에 대해 양혜왕과 대화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왕인 척하지만 어디까지나 왕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이웃 나라의 폭압적인 왕의 정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오십보 백보’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맹자는 왕의 왕을 대면하면서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라는 말을 꺼내며 ‘오십보, 백보’를 언급했다고 한다. 정치를 ‘왕도와 패도’로 구분하고 왕도정치를 주장한 맹자의 정신이 우리 정치에도 구현되길 간절히 바란다.

옛날 군주 시대 배경으로 지금과는 다른 시대 상황과 사회 현실이지만, 정치의 본질을 일깨우는 맹자의 비판은 깊이 새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새 정부, 아니 어떤 정부나 정권이라 해도 ‘오십보, 백보’가 되지 않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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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20:16:30
국정 운영에 필요한 철학, 비전, 그리고 국가 성장을 위한 기본적 역량과 교육 부문의 적절한 인식과 인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정치는 민생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미래를 위한 확고한 방향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정치가 국민을 위해 바라보는 눈높이가 높아지길 바라며, 오십보와 백보를 뛰어넘는 정치적 지혜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