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총장님!
[장산곶매] 총장님!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2.10.10
  • 호수 155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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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경<편집국장>

안녕하세요, 총장님. 저는 한대신문 86대 편집국장 이휘경입니다. 이 자리 아래 7면 한 켠에는 총장님 성함과 제 이름이 함께 써 있습니다. 총장님께서 한대신문의 발행인이신데도, 저는 2년 차로 일을 하며 한 번도 총장님을 만나 뵌 적이 없네요.

총장님. 저희 한대신문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여러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단 걸 아시나요? 취재 준비 단계에서 기자는 하나의 심장을 꺼냅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닳고 닳을 때까지 마음을 다해 자료 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작성하고, 퇴고를 거듭합니다. 다음 기사를 작성할 땐 또 하나의 심장을 꺼냅니다. 이미 해진 심장을 회복하기엔 너무 많은 힘이 들거든요.

항시 객관적이어야 할 신문에서 왜 기자들이 마음을 쓰는 지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취재는 사실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기자들은 학우들의 기쁨과 슬픔, 억울함과 분노 등이 오롯이 마음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도록 눈과 귀를 엽니다. 이렇게 채워진 마음이 곧 취재의 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취재는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가 불발되는 것은 예삿일이며, 인터뷰이의 날 선 말투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어디 인터뷰뿐일까요. 밤새 원고를 작성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는 데에도 심사숙고를 거듭합니다.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진 원고는 데스킹 과정에서 깎이고 다듬어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편집국장을 하고 있긴 하나, 기사를 작성할 당시엔 마음으로 낳은 기사가 아무리 잘 다듬어진들 전면 수정이 되면 심술이 나곤 했죠. 이 과정에서도 또 여러 번 마음이 쓰입니다.

왜 필사적으로 정제된 지면 위에 난데없이 푸념을 하느냐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퀘퀘하고 오래된 벽과 창문으로 둘러쌓인 학생회관의 낡은 사무실에서 이렇게 뜨거운 마음이 끊임없이 탄생과 재탄생을 거듭하고 있단 것을, 신문 한 켠에 자리를 같이 하지만 한 번도 뵌 적 없는 총장님께 알리고 싶었습니다.

총장님. 저는 단 한 번도 소속감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편집국장이 되고 나서는 자꾸만 매주 밤을 새는 기자들이 눈에 밟힙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글쎄요. 이건 얼마짜리 고생일까요. 학보사는 스펙으로서도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데, 이들은 뭘 위해 밤을 새고 구박을 받아가며 기사를 쓰는 걸까요.

이 글을 작성하는 책상 앞뒤로 부장과 정기자의 피드백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사 내용에 푹 빠져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지, 어떤 표현을 써야할지 끊임없이 토론합니다.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대변하고, 누군가의 상황을 좀 더 낫게 하기 위해, 외면 받는 초라한 종이에라도 작은 목소리 하나 하나 모아 실을 수 있도록 잠을 줄이고, 식사 시간을 줄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문이 코로나19로 인한 건물 폐쇄 기간 동안 관재팀에 의해 대다수의 배포대가 철거돼 수위실 창틀 선반이나 분실물 보관함 위에 덩그러니 놓이고 있습니다. 예산 심의가 11월에 있단 이유로 배포대 제작 신청은 무산됐고, 임시로 관재팀이 보관하고 있는 가판대를 받기로 했습니다. 학생지원팀으로부터는 신문 부수를 줄여야하지 않겠냐는 압박이 들어옵니다. 또 갑자기 리모델링을 해주겠다며 부르더니 사무실 면적을 줄여 쓸 방법을 생각해오라고 하십니다. 왜 저희는 끊임없이 학생들을 위해 발로 뛰는데, 신문 부수는 줄고, 계속 해서 여러 압박을 받는 건가요?

대학 언론은 학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포착하고 건설적인 대화가 오고갈 수 있도록 하는 광장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대학 언론에 대한 투자는 곧 대학이 얼마나 소통을 중시하고, 열린 대화를 행하는 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총장님. 저희 한대신문의 발행인으로서, 한대신문이 놓인 여러 상황들을 한 번 살펴보심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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