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평범한 글자도 작품으로
타이포그래피, 평범한 글자도 작품으로
  • 윤재은 기자
  • 승인 2022.09.26
  • 호수 1554
  • 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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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을 걷다 보면 통 큰 바지에 화려한 서체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는 올해 유행 경향이기도 한 ‘스트릿패션’으로 2000년대 초 복고풍과 더해져 기본적인 티셔츠지에 큰 로고 하나만 박혀있는 스타일이 다시 유행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자주 활용돼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와 옷의 패턴은 사실 타이포그래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타이포그래피란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란 글자를 배치하고 특수한 목적에 맞춰 조정하는 것으로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디자인의 한 분야다. 과거 활자와 서체의 배열만을지칭했지만, 오늘날엔 글자로 이뤄진 디자인 영역 전체를 뜻한다. 이는 글자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본래의 뜻이 더욱 잘 전달되도록 돕는다. 이 때문에 이미 다양한 업계에선 △광고 △상품 로고 △영화 포스터 제작 등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 타이포그래피가 활용된 광고 문구들이다.
▲ 타이포그래피가 활용된 광고 문구들이다.

지금의 타이포그래피가 만들어지기까지
타이포그래피란 용어는 생소할 수 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발전해왔다. 타이포그래피는 14세기 인쇄술 발달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만들어진 타이포그래피는 손글씨와 비슷해 가독성이 떨어졌으나, 근대 들어서 이를 보완해 보다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로만체와 바스커빌체가 그 대표적 예시다. 두 글씨체는 오늘날까지 깔끔하고 가독성 높은 서체로 사랑받고 있다.
 

▲ 왼쪽은 로만체, 오른쪽은 바스커빌체의 모습이다.
▲ 왼쪽은 로만체, 오른쪽은 바스커빌체의 모습이다.

이후 △광고 △신문 △책 등 실생활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된 타이포그래피는 19세기 말 등장한 ‘뉴 타이포그래피’ 이론을 계기로 체계적인 제작 기준을 갖추게 된다. 디자인대 교수 A씨는 “뉴 타이포그래피 이론의 핵심은 과할 만큼 화려하게 제작된 서체 활용은 지양하고 최대한 간결한 형태로 의미를 전달하는 목적에 주안을 둔 것”이라며 “이 이론을 통해 가독성을 최우선시하는 기조가 현재까지 이어져 불필요한 장식을 막을 수 있었고, 이러한 장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런 타이포그래피는 지난 1980년대 웹(Web) 기술이 등장하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활자의 가독성만 신경 썼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상에서 배치와 배열도 수정할 수 있게 돼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래피티 △손글씨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성식<남서울대 영상예술디자인학과> 교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세부적으로 디자인을 꼼꼼히 수정할 수 있게 되면서 타이포그래피의 활용도가 더욱 증가했다”며 “오늘날 모든 미디어에서 시각 정보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전했다.

자연스레 시선을 이끄는
이렇듯 타이포그래피는 오랜 시간 수정되고 발전을 거듭해 만들어진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이런 타이포그래피는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러스트 활용 △서체 △글씨 크기 △색상 등 여러 창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이 점은 사람들에게 밋밋한 글자가 주는 깔끔함 대신 독특한 구조와 의미를 지닌 창작물로 다가갈 수 있단 장점을 지닌다. 강송희<디자인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는 “타이포그래피는 그 자체로 일반 서체보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목할 수 있도록 하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며 “창의적으로 디자인을 시도해보고 이를 제한 없이 어느 곳이든 활용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 특히 광고와 같은 의미 전달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만지는 데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타이포그래피는 정보 전달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좋은 타이포그래피는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이해하려 고심하지 않아도 시청과 동시에 빠르고 쉽게 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타이포그래피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중해야 할 지점을 부각시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타이포그래피의 장점이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미국의 IT 기업인 애플이 지난 2016년 아이폰7을 출시할 때 활용했던 ‘Don’t Blink’ 광고가 있다. 이는 단 107초 안에 휴대폰이 가진 신기술을 간결하게 담아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당히 빠른 전개 속도를 가지고 있어 글자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짐에도, 보는 사람들은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강 교수는 “굳이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지 쳐다만 보고 있어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글자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며 “이는 타이포그래피가 지닌 고유하고 파급력 있는 장점을 모두 보여주는 사례”라 설명했다. 

또한 서체엔 감각과 느낌, 즉 표정이 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타이프페이스’라 한다.  이는 서체가 가진 시각적 형태적 특징, 즉 생김새를 말한다. 이러한 타이프페이스는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서체마다 쓰임이 다르다고?
이처럼 타이포그래피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가장 바탕이 되는 제작 요소는 바로 서체다. 이는 각각 △무게 △스타일 △크기로 이뤄진 활자의 집합을 의미하며, 종류는 크게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로 나뉜다. 세리프체는 활자의 획 가장 끝부분이 돌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가독성이 좋아 주로 책이나 신문 등에 많이 쓰이며, 우리나라에선 명조체가 대표적이다. 반면, 산세리프체는 세리프에 프랑스어로 ‘없다’는 뜻을 가진 ‘Sans’를 붙인 것으로, 세리프가 없는 서체다. 이는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서체이기 때문에 주로 디지털 화면에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선 고딕체가 대표적이다. 

이 두 서체의 인상과 그 효과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론 미국의 다국적 IT 회사 구글이 있다. 구글은 지난 1998년부터 사용하던 세리프 로고를 17년 만에 산세리프로 바꿨다. 구글의 사업 범위가 넓어져 로고가 주는 효과가 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구글 제품의 사용이 PC만이 아닌 △모바일 △시계 △자동차 △TV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는 경향성을 반영해 전략적으로 로고 서체를 바꾼 것”이라며 “다양한 환경에서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서체를 달리해 제작한 것”이라 설명했다.

▲ 위는 세리프가 있는 서체 아래는 세리프가 없는 구글의 로고다.
▲ 위는 세리프가 있는 서체 아래는 세리프가 없는 구글의 로고다.

 

타이포그래피와 조금 더 친해지기
서체에 이어 자간과 행간의 배열 역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에 있어 필수요소다.  A씨는 “이 두 요소는 너무 넓거나 좁으면 균형이나 가독성에 악영향을 준다”며 “서체의 크기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면 가독성이 좋아지고 문구의 주목성을 높여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배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

▲ 위의 사진은 자간 조정 전 아래는 자간 조정 후의 모습이다.
▲ 위의 사진은 자간 조정 전 아래는 자간 조정 후의 모습이다.
▲ 행간이 좁으면 글자를 읽기 어려운 것을 볼 수 있다.
▲ 행간이 좁으면 글자를 읽기 어려운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자의 공간 역시 중요하다. 글자에는 속공간과 겉공간이 있는데, 속공간은 글자 획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빈 공간을 말하며, 겉공간은 글자의 바깥을 의미한다. 속공간이 작으면 글자가 두꺼워 보여 강조하는 효과가 있고, 반대로 넓으면 소형 디스플레이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A씨는 “글자의 공간은 판독성 및 가독성과 크게 연관되어 있는 요소”라며 “속공간이 작고 글자의 획이 굵으면 획과 획 사이가 붙어 글자를 쉽게 알아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위의 사진을 보면 서체마다 다양한 속공간 크기를 볼 수 있다.
▲ 위의 사진을 보면 서체마다 다양한 속공간 크기를 볼 수 있다.

이 차이를 보여줄 대표적인 예시론 ‘네이버 로고’가 있다. 네이버의 지난 2000년대 로고를 살펴보면, 속공간의 크기가 너무 작을뿐더러 겉공간의 색 또한 진한 색이라 굉장히 답답해 보인다. 현재의 로고는 이전보다 커진 속공간과 깔끔한 겉공간의 대비로 훨씬 가독성이 좋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다.

▲ 위는 2000년대 로고의 모습이고, 아래는현재 네이버의 모습이다.
▲ 위는 2000년대 로고의 모습이고, 아래는현재 네이버의 모습이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타이포그래피를 발견할 때 이에 적용된 다양한 원리와 제작 배경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디자인이 더욱 특별하고 재미있게 보일 것이다. 다채로운 이미지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도움: 김성식<남서울대 영상예술디자인학과> 교수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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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23:42:24
서체의 선택과 디자인의 창의성을 통해 감각적인 표현과 느낌을 담아낼 수 있어 기업의 이미지 형성과 브랜딩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체의 쓰임은 활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며, 각 서체는 특정 분야나 환경에 적합한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타이포그래피를 선택하여 디자인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세밀한 디자인의 수정과 조정을 통해 눈길을 사로잡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